캐나다의 의료제도와 이어지는 생각들…

캐나다의 의료제도와 이어지는 생각들…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가 매우 좋다는 (특히 미국에 비해서) 이야기는 요즘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때로는 자부심까지 느끼게도 하는 것 이슈가 한국의 의료제도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길다린 국경을 맞대고 바로 지척에 있으면서, 경제규모와 인구수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땅덩어리는 무지막지하게 차이 나지만) 캐나다의 의료제도는 미국과 사뭇 다르다. 기본적으로 영연방국가라서 그런지 영국의 NHS제도와 흡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의료의 공공성에 더욱 치중하고, 가정의학과 의사를 일차 진료의로 국민들을 묶어 두고 있는 인두제 등등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전문의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들고, 담당 가정의학과 의사의 진료 역시 쉽지 않으며 왠만큼 아픈 것은 약국에서 스스로 약 사먹고 버티는 현실이 희한하게 제도의 극단에 서 있는 미국과 유사하다. 한국의 놀라운 접근성, 신속함, 비교적 저렴한 가격 등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내가 있는 알버타 주는 Alberta Health Service (AHS)라는 공공기관이 대부분의 의료를 책임진다. 세금으로 운영되며 거의 공짜(약간의 자기 부담금도 발생한다고…)로 대부분의 질병을 치료 받을 수 있다. AHS는 캘거리와 알버타 주에 있는 대부분의 의료기관을 거느리고 있고, 따라서 그 의료기관에 일하는 의사들은 AHS 소속 반-공무원인 셈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공공의료기관인 것은 아니고 개인클리닉을 열어 행위별수가(fee for service)에 준해 AHS로부터 지불을 받는 곳도 있다. 어쨋거나 의료는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이곳 주민들에게 명확하게 박혀 있다. 따라서 의학적 문제의 패턴, 우선순위, 의료자원의 배분 등에 대한 현실적 관점이 우리나라와 꽤 다르다.

대표적으로 우리와 차이가 나는 의료분야가 ‘외상’이 아닐까 한다. 약국에 가서 수많은 종류의 약품들 중에 복용할 약을 직접 고를 때는 마치 여기가 무의촌처럼 느껴지지만 응급상황을 요구하는 외상이 발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앰뷸런스, 응급헬기 이송 등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히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의 응급실은 말그대로 응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셋팅되어 있다. 응급처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은 철저히 우선순위에서 밀리도록 체계화되어 있다.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라 민원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그래봐야 본인들의 의사가 씨알도 안 먹히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왠만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유도되는 것이다. 의료인 교육도 외상 분야에 대해 더 잘 이루어지는 것 같다. 여기 재활의학과 레지던트 교육을 참관중인데 잠깐이지만 외상관련 재활에 대한 교육이 우리보다 강화된 것을 느꼈다. 한국의 외상의료와 응급의료의 내재된 수많은 문제점들을(일일이 언급하지 않겠다) 생각하면 때론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정말로 누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는 시나리오에선 냉정하게 캐나다 의료가 우리나라보다 한수 위라고 판단한다. 나의 연수에서 주 target 질환이자 응급, 중증의 대표적인 질환인 뇌졸중의 경우에 캘거리 시내에서 발생하는 환자의 90%는 모두 내가 있는 Foothills 병원(3차 상급종합병원)으로 집중되어 급성기에 적절한 시술 등을 받는다. 이후 발생한 기능적 문제에 대해 뇌졸중 재활 프로그램이 다양한 루트로 연계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비용은 AHS에서 커버를 한다. 한편 그렇기 때문에 의료전달체계에서 환자의 선택권이 대폭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의료진이 퇴원, 전원 등에 대해 결정권을 쥐고 있다.

그러나 이곳 의료시스템에도 많은 허점이 있는데 암과 같은 질환의 경우 경우 우리나라의 높은 접근성과 검진시스템(다소 기형적이지만), 빠른 진료체계는 이곳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우월하다. 가벼운 근골격계통증, 안과/이비인후과 같은 마이너계열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어마어마한 전문진료 인프라는 따라올 수가 없다. 전자는 대형병원 중심의, 후자는 개원가 중심의….. 주체는 다르지만 유사한 시장경제논리 덕분에 이루어진 체계라고 생각된다. 어쨋거나 사용자 입장에서 좋은 것이니 우리나라 시스템도 꽤 훌륭해 보인다. 공급자의 ‘자발적인’ 피땀과 자기파괴적인 소모를 잊지말자. 그리고 이곳은 거대한 땅덩어리 때문에 의료의 공급과 접근성의 조건이 다르고, 제도를 단순히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음을 주지해야겠다.

이러한 현상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한국사회와, 이곳의 큰 차이점인 ‘사람값’에 대한 인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는 무슨 일이던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발생되는 비용이 한국보다 훨씬 늘어난다. 그리고 모두 그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국의 신속한 배달, 깔끔한 A/S는 어느정도 싼 사람값, 혹은 사람값을 싸게 여기는 풍토에 기반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좋아할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누릴 때는 좋지만 알고보면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자신도 그 굴레에 엮여 있다. 의료라고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동네 구석구석마다 포진한 전문의들의 섬세하고 신속한 진료, 제조업 공장의 공정처럼 이루어지는 대형병원의 거대하고 효율적인 진료 시스템. 그 기저에도 의료진의 사람값을 싸게 여기는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의료수가 산정의 근간이 되는 상대가치점수라는, ‘사람값’의 직접적인 지표까지 굳이 들여보지 않아도 된다. 한 명의 의료인을 길러내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그에 대한 존중과 적절한 보상 같은 생각은 우리 사회에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각자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윤이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위치에너지의 차이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성가시게 들리고 서로의 . 이 관점을 동원하면 앞서 언급한 캐나다와 미국이 의료제도의 극단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의료행태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한꼭 어느 사회가 우월하다 열등하다를 떠나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이들이 모여살아온 농경사회, 드넓은 대지와 자연을 눈 앞에 두고 누구든 와서 뭐라도 해보라는 사회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한국처럼 높은 접근성과 신속한 처리로, 모든 의학적 문제들이 소외되는 분야없이, 게다가 공공성을 보장하면서 처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양립하기 힘든 내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오류를 흔히 범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율이 가끔 여기서도 이슈가 된다. 사람값을 두고 생각해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은 이제 ‘제대로된 사람값’에 대해서 감지하고 있고, 결국 해결책은 사람 수가 줄어드는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집단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물론 부양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일시적 어려움이 발생하겠지만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그 또한 찰나에 불과하다. 부족한 생산력, 노동력, 군사력 등등 제기되는 문제는 로봇과 AI로 무장하고 일당백을 하는 사람을 잘 길러서 제대로 사람값을 받게 하면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지구에 지금 인간이 너무 많다. 스스로 줄이던지… 아니면 강제로 줄임을 당하던지 언젠가 둘 중 하나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지구에 나타난 생물종의 99%모두 멸종했다. 인간이라고 뭐가 다를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이 희안한 현상에 대해 한국 젊은이들이 어쩌면 이 행성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논문 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항상 잡글로 샌다)
(마지막 두 문단은 현실도피성 망상글이니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없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