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1심방1심실로 순환하고, 개구리는 2심방1심실로 살아가고, 인간은 2심방2심실로 공기 중에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정규교육을 받은 성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유기체가 물이라는 생명의 자궁을 떠나 대기를 만끽하고, 부력 포기하면서 중력을 이기기 위해 투쟁해온 역사가 이 순환계의 구조에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2심방 2심실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 의과대학 학생시절 순환기학에서 배웠던 선천성 심기형 수업은 말그대로 ‘의학의 꽃’이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공고하게 믿고 있던 인간의 2심방2심실 순환시스템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한 것처럼 어느 스펙트럼에 놓여 있는 한 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기형’이라는 말이 주는 불편한 어감을 제외하고 바라본다면 심장의 구조와 생리도 조물주의 변주 안에서 다채롭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병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싸워온 서양의학의 역사는 말 그대로 위대한 역사이다. 심기형이 가진 아이를 살리기 위해 흉부외과 의사들이 떠올린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 오묘한 순환생리를 공부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물론 나는 전혀 다른 전공을 선택했고, 다른 수많은 의학이 분야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는 내일이 아닌 것들로 여기고 학창시절 추억의 한켠에 접어두었다. 다시는 그 내용들을 떠올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6세의 젊은 남자 환자를 재활의학과로 옮겨 전과해서 집중적으로 재활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장내과 교수님의 의뢰를 받고 나는 수없는 고민에 휩쌓였다. 환자는 선천성 심기형으로 영아기부터 수차례 심장수술을 받은 상태로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다리에 생긴 봉와직염으로 패혈증이 와서 병원에 입원을 하였고 이후 심기능이 극도로 떨어져서 LVAD라는 기계 장치의 도움을 받아 겨우 침상생활을 하는 상태였다. 처음 환자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50kg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 머리털은 윤기를 잃어 이미 듬성듬성한 상태였다. 잠깐 침대에 앉는 것도 지쳐보였고, 다리의 근육을 만져봤을 때는 근육은 80~90대 노인의 그것처럼 위축되고, 짧아져 있었다. 쓰지 않는 근육은 점점 더 작아지고 쪼그라든다. 이미 병원에 1년 이상 입원한 상태라서 재활의학과에서 옮겨서 1달 정도 재활을 해서 어느정도까지 기능회복을 만들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환자에게 재활운동을 어떻게 시켜야할지 캄캄한 상태였다. 따로 심장내과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 솔직한 속내를 말씀 드렸고, 환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부담없이 결정해도 된다는 답을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따로 도와드릴 것이 없을 것 같아 다시한번 환자를 찾아갔다. 안타까운 마음과 현재 내 결정을 간곡히 말씀 드렸다. 차분히 대화를 오가던 중 환자의 모친이 울음을 터트리며 우리 아들은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울부짓으시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그러면 “재활로 옮기셔서 한번 해볼까요?”라고 답을 하고 말았다. 남아일언 중천금이고 낙장불입이니 어떻하겠는가. 환자는 어느새 재활병동으로 오시게 되었다. LAVD라는 ‘무시무시한’ 장비를 달고 온 환자를 보시는 간호팀의 불안섞인 눈빛이 내 뒤통수를 따갑게 치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이 환자의 선천성 심기형을 살펴보자. 애초에 이 환자는 폐동맥 폐쇄 및 온전한 심실중격 (PA with IVS)로 태어났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폐순환을 담당하는 우심실로 정맥혈이 우심방을 통해 들어와도 나갈 길이 없다. 따라서 폐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태어나면 바로 산소공급부족으로 아이는 사망하게 된다. 엄마 뱃속에서는 괜찮다. 탯줄이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니까. 이 상황을 위대한 흉부외과 의사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Right Modified Blalock-Taussig shunt라는 수술과 심방중격 절제술로 일단 아이를 살린다.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선 우측 쇄골하동맥과 폐동맥을 인조혈관으로 연결해 폐로 피가 가는 길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좌우의 심방사이 벽에 구멍을 내서 폐정맥으로 돌아오는 산소가 가득한 동맥혈과, 대정맥으로 돌아오는 정맥혈을 섞어준다. 그러면 어중간하게 섞인 혈액이 체순환을 돌면서 아이는 살 수 있다. 그 이후 시간이 좀 지나 폐동맥 판막성형술을 통해 막힌 폐동맥을 열어준다. 왜냐하면 계속 폐동맥이 막힌 상태가 되면 결국 우심실은 위축되고(쓰지 않는 근육이 위축 되듯이), 아이는 물고기나 개구리처럼 단심실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이 환자도 거기까지 시도했지만 폐동맥을 확장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흉부외과 의사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과감히 폐순환을 포기하고 “단심실 생리 (single venticle physiology)”로 전환한다. 상반신에서 내려오는 상대정맥을 폐동맥에 연결하고 (Bidirectional Cavo-pulmonary shunt), 최종적으로는 하반신에서 올라오는 하대정맥을 인조혈관을 통해 폐동맥으로 연결(Extracardiac conduit Fontan) 수술을 통해 좌심실로 체순환을 하면서, 폐순환은 정맥압에 의존하는 기이한 상태로 만든다. 이 술식을 개발한 프랑스의 위대한 흉부외과 의사 Francis Fontan의 이름을 따서 폰탄 수술이라고 부른다. 내 환자도 이 만 4세 경에 이 폰탄 수술을 받은 상태에서 학교도 다니고 성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패혈증의 후유증으로 하나뿐인 좌심실이 심각한 심부전에 빠지게 되었고, 도저히 순환이 감당이 안되어 심장이식을 받기 전에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버티는 와중에 나는 이 환자를 만난 셈이다.
폰탄은 경이로운 성취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다. 좌심실, 단심실이 유일한 순환의 원천이고 폐순환은 오로지 수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정맥자체의 압력이 높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간경화 혹은 유미흉이 잘 생기고 (이 환자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액, 즉 수동적으로 돌아오는 폐정맥이 적어 체순환으로 연결되는 심박출량이 줄어든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심장재활이라는 운동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환자의 신체적 기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심장재활 프로그램은 좌심방 좌심실이 체순환을 담당하고, 우심방 우심실이 폐순환을 제대로 한다는 전제에서 적절한 강도의 유산소 운동, 즉 운동부하를 가하면서 기능을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 환자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말그대로 유산소 운동은 산소 요구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그만큼의 폐순환과 폐기능이 따라받혀 주어야 한다. 폰탄환자는 기본적으로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심박출량이 제한된다. 뿐만 아니라 정상적이면 운동에 따라 확장되어야 할 폐혈관 반응도 떨어진다. 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LAVD도 문제이다. 이 기계 장치는 부실한 좌심실의 펌프기능을 대체하기 위해서 좌심실에서 피를 빨아드려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피를 보낸다. 그러나 운동부하에 따라 펌프 기능이 바뀌진 않고 지속적으로 순환을 돌리는 구조이다. 설령 운동부하에 따른 응답 펌프기능 향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좌심실로 들어와야할 폐순환이 부실하기 때문에 심실이 쪼그라들 수도 있다. 운동 반응에 따른 심혈관계의 반응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나 혼자 해결이 어려울 것 같아서 환자를 담당한 심장재활 전담 물리치료사 선생님, 임상심리, 병동 간호팀 등 재활에 참여하는 전문 인력들이 모두 모였다.
재활의학과로 옮길 당시 환자의 상태는 당장 중강도 수준의 유산소 운동 자체가 불가능하고 겨우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서서 제자리 걷기 정도가 가능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주목했던 말초 근육의 문제가 두드러졌다. 관절들은 장기간 침상생활로 조금씩 구축되어 있었고, 영양상태와 근육의 질도 매우 나쁜 상태였다. 심장재활운동에는 중추효과 (central effect)와 말초효과(peripheral effect)가 있다. 이름이 심장재활이다 보니 중추, 즉 심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흔히 주목하게 되지만 의외로 말초 영역이 가지는 역할이 현실에서는 매우 크다. 근육이 탄탄해지고, 근섬유의 질이 좋아지면 같은 운동부하에서도 중추가 가지는 부담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이 환자의 심장재활운동을 설계함에 있어서 중추적인 부분은 너무 위험부담이 많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럴 때는 차라리 말초기관, 즉 골격근에 주목하자는 것이 팀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거기에 폰탄 환자는 한 가지 더 추가적인 이득도 고려해볼 수 있다. 우심실 폐순환이 없는 폰탄 환자의 주 폐순환 동력은 호흡에 의한 음압과 하체근육의 수축에 따른 근육 펌프이다. 따라서 근력 운동을 더욱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호흡음압을 키우기 위한 각종 호흡재활 훈련 기법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재활과정은 비단 운동이나 약물같은 것만으로 결코 성공적일 수가 없다. 회의에서 얻은 중요한 정보는 이 환자가 장기간의 투병생활로 인해 의존적인 (특히 어머니에게) 상태라는 점이었다. 다행히 심리평가에서 우울증이나 불안과 같은 유의미한 정서문제는 없었다. 의료진은 이 환자를 대할 때 가급적 단호하고 따금한 태도로 재활과정을 독려해나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또한 체중을 모니터하며 영양공급을 적극적으로 챙기고 무엇보다 폐렴과 같은 다른 감염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내과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약 한 달 간의 집중적인 재활이 끝날 무렵에는 환자는 보호자 동반하에 병동을 걷고, 계단도 반층 정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기능을 회복하여 기쁜 마음으로 퇴원 시킬 수 있었다. 많은 고민과 공부, 논의를 하면서 재활을 했지만 그만큼 나 자신의 배움과 소득이 많았던 환자였다. 머리속에 이 경험을 깊이 새기면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안타깝지만 이 환자는 퇴원하고 3주 만에 폐렴이 걸려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중환자실 재활을 위해 연락을 받고 찾아갔을 때 이미 그마저 기계의 도움을 받던 심기능은 불이 꺼지듯 가라앉고 있었다. 심장이식 대기 1순위로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고 갑자기 공여자가 생겨서 심이식이 계획된 어느 토요일을 버티지 못하고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순간 제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