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 모닥불 피우기에 관하여>

최근에 심란한 일도 많고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그것을 미리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연수에서 돌아온지 딱 1년 남짓 지난 시간인데 설연휴를 끼고 캐나다에 짧지 않은 시간을 담그고 왔다. 사실 계기는 큰 놈이 이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그 전에 뭔가 큰 행사가 필요한 것 같기고 했고, 유효기간이 종료되어가는 마일리지도 쌓여 있었다. 여하튼 익숙하면서도 아련한 캘거리와 밴프를 다시 만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느긋한 여유를 갖는다.

밴프에서 5박6일 정도 머무르며 아이들과 스키도 타고, 겨울 하이킹도 다니고 예쁜 밴프시내를 거닐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지금이 이동네는 비수기라 숙박이 생각보다 꽤 저렴한 편이다. 밴프 숙박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우선 다운타운 주변에 호텔형 숙박이 있고,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지만 터널산 (Tunnel mountain) 인근에 밀집한 롯지형의 숙박이 있다. 나는 명백히 후자를 선호한다. 가격도 조금 저렴할 뿐더라 롯지에는 나무를 떼울 수 있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고, 롯지 바깥에 장작을 쌓아두고 숙박객이 자유롭게 뗄 수 있도록 허용한다. 나는 이곳에 묵을 떼면 거의 벽난로 앞에 살다시피하며 모닥불을 관리한다.

의외로 벽난로의 모닥불을 피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아마 처음 경험해보는 사람은 불을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 보통 입실을 할 때 리셉션에서 Kindling이라고 부르는 불쏘시개 한 뭉테기를 신문지에 싸서 성냥과 함께 제공한다. 이것을 가지고 큼지막한 장작불을 (캐나다 장작은 참나무 위주의 한국장작과 성격이 다르다. 수종도 다르고 크기도 훨씬 크다)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그냥 문명의 산물인 가스토치를 가지고 다닌다. 손쉽게 불을 일으키고, 또 불이 사그러들면 새로운 장작과 함께 쉽게 화염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게 없는 경우에라도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적절한 장작배치와 신문지 조각, 성냥, 불쏘시개 만으로도 기가 막히게 모닥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 경지는 아니다.

어느 곳을 가건 나무를 떼는 벽난로에 가면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기구들을 갖추고 있다. 사다리꼴로 만들어진 벽난로 공간 안에는 쇠로 된 화로대가 있고, 불똥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철제 스크린 같은 것이 보통 앞에 장치되어 있다. 굴뚝으로 가는 공기의 유량을 조절하기 위한 밸브가 설치되어 있고, 벽난로 옆에는 장작을 조절하기 위한 여러가지 장비들이 거치대에 놓여 있다. (잘 쓰지는 않는다) 상당히 정형화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이곳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진, 혹은 수렴된 난방문화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미나이에 물어보니 역시 그렇다고 하네…. 쇠창살처럼 생긴 화로대는 Grate라고 부르고 장작을 바닥에서 띄워서 공기의 유입을 원활하게 만드는 핵심 부품이라고 한다. 벽난로 옆의 거치대에 놓은 물건들을 Companion Set라고 부르는데 거기에는 장작을 뒤적여서 공기통로를 만들어 내는 Poker (한국말로는 부지깽이가 되겠다), 뜨거운 장작을 집는 Tongs (집게), 그리고 재를 처리하는 Brush & Shovel 등이 포함된다. 나는 이 장비들을 사실 거의 쓰지 않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모닥불을 가지고 놀지만 아마 이 셋팅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매우 친숙한 물건이겠지. 한국에서도 전통 가옥의 아궁이와 온돌에 맞추어진 특유의 모닥불 셋팅이 있을 것이다. 나도 아주 어릴적에 시골 한옥집 아궁이에서 솔가지들을 태우던 희미한 기억만 남아 있다.

왜 모닥불을 보면서 하염없이 빠져들게 될까? 글쎄…. 나무 장작이 타는 과정은 묘하게도 세상사와 많이 닯아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나무가 불타는 일이 대수겠거니 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나무토막이 불이 붙어 화염이 일기까지는 수많은 변수들이 작동한다. 장작의 수종, 건조 정도, 상태, 수피의 유무 등 뿐만 아니라 쌓여 있는 장작이 쌓여 있는 구조, 그 구조에 따른 공기의 흐름 등 일일히 계산하기 힘든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다. 통제 가능한 것 같으면서도 통제 가능하지 않고, 오롯이 순간순간 경험에 따른 직관만이 작동한다. 활활 타올라 끝없이 번성할 것만 같던 불꽃도 순식간에 사그러들고,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이 끝난 것 같던 거무튀튀한 나무 토막들도 조금만 바람 구멍을 열어주면 참았던 유증기를 폭발하며 화염으로 일어난다. 모든 것이 그러하지 않은가? 잘 되는 것이 계속 잘 되는 것이 아니며, 바닥이 늘 바닥이 아니고 유일한 사실은 끈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뿐이다. 밤새워 벽난로 앞에 앉아 장작을 뒤적이다보면 마치 대하드라마 한 편을 본 것과 다름이 없다. 유일한 시작과 끝은 롯지의 check-in과 check-out 뿐…..

잠시 후 이륙할 밴쿠버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이만 잡설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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