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jkms.org/search.php?where=aview&id=10.3346/jkms.2019.34.e108&code=0063JKMS&vmode=FULL
연구와 관련한 또다른 잡설 하나…
2016년에 시작한 연구하나가 구천을 떠돌다 최근에 무사히 한 저널에 안착했다. 연구 내용은 매우매우 간단하다. 신경계 질환으로 인해 구음장애 (말이 어눌해 지는 것) 를 가진 환자들의 발성을 음성인식프로그램으로 돌려서 봤더니 구음장애의 심각도가 음성인식프로그램이 계산한 확률과 상관관계가 있어서 환자평가용으로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연구이다.
연구를 하게된 동기는 상당히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도에 분당에서 처음 주치의를 하면서 말이 어눌해진 환자분들을 많이 만나던 중이었다. 아이폰을 바꾼지 얼마안된 때였는데 포털앱에 음성검색기능을 보고 심하게 어눌한 사람들은 잘 검색이 안되겠다…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초진을 보면서 몇몇 분들에게 테스트를 해봤더니 심한 분들은 오답률이 높고 경한분은 낮았다. (사진처럼)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당시 어쩐일인지 분당 정자동 네이버 인근에 출몰하던 도라이바와 병원 근처서 만나 밥을 먹고 탄천 어딘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노가리를 깠다. 서로 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같이 엮어 볼게 없을까 하던 중 이 테마가 도마에 올랐다. 그때는 나도 그도 코앞에 놓인 일들을 헤치우는데 급급했던 터라 더이상 진행은 하지 못했다.
2015년에 팰로를 시작하면서 나도 연구를 좀 해볼 상황이 되었고, 도라이바도 미국에서 계속 음성쪽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메일을 주고 받으며 계획서를 쓰고 어쩌고 했으나 원내과제 계획서도 떨어지고, 여건이 쉽지 않아 또다시 포기를 했었다.
2016년들어 산재병원을 들락거기게 되면서 거기에 방음시설이 있는 것을 보고 접었던 옛날 기억이 되살아 났다. (이 연구를 하려면 방음시설이 필요하다.) 마침 그곳에서 센터장을 하시던 자호리 선배에게 이 아이템을 들이밀었더니 Go!하시어 기어코 프로젝트가 시작이 되었다. 나는 열심히 혜화와 인천을 오가며 녹음을 했고, 태평양을 건너간 소리들은 도라이바의 컴터에서 데이터로 돌아왔다. 결과도 그럭저럭 깔끔하게 나오긴 했지만 리젝에 리젝을 거쳐 2019년에 들어서 이제사 논문으로 나왔다.
솔직히 별 대단한 연구가 아닌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안다. (받아주신 저널 편집자 분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ㅋㅋ) 첨 아이디어가 생각났을 때 나왔다면 쬐금 팬시했을지 모르지만 AI가 난무하는 요즘 세상이 이깟 연구야 어디 내놓기 좀 부끄러운 수준이다.
근데 꼭 뭐 대단하고 엄청난 연구를 해야하나…
허접하지만 고등학교축제에 낼 전시물을 복닥거리며 만들듯, 혹은 일인분에 천원 ~ 이천원 하는 정체불명의 대패삼겹살(이를테면 싸다돼지마을) 십여인분을 소주와 함께 먹고 (물론 마무리는 볶음밥으로), 이차에서 어디 흔해빠진 대학가 호프집에서 쏘세지야채볶음과 함께 물을 꼭 탔을 것만 같은 생맥주를 마시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듯 … 옛친구와 선배와 같이 연구를 한답시고 부스럭거리던 이 과정은 되잡을 수 없는 추억을 곱씹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 아닌가.
30대의 끝자락에 서서 뭘 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한게 없는 것 같고,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고 아니 잡은 것도 아니고, 이제 본격적으로 막 엄청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한 것만도 벅차고,,, 지리멸렬하게 끌고온 연구 하나를 마무리하다보니 지나간 세월의 흔적에 별 감상이 다 든다. 나는 이 연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잡설을 쓰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