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rilia..
몇 일전 길을 걷다 우연히 오토바이 옆을 무심히 지나는데 시야를 살짝 스쳐가는 ‘aprilia’에 글자가 가던 발걸음을 돌려 그놈을 꼼꼼히 둘러봤다. 흠.. 뭐랄까.. 한참 전에 헤어진 옛 연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난 기분이랄까? 아쉽게도 난 ‘헤어진 옛 연인’ 같은 것 없지만 말이다. …
지금은 머 길에 뿅카나 할리 데이비슨이 지나가도 심드렁하지만 20대 초반, 한때는 부끄럽게도 오토바이에 빠져 있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천씨, 권찬혁 같은 친구들조차 그 무렵엔 잠깐 오토바이를 탔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청춘의 에너지는 지나고나면 깨닫게 되지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괴이하다.(아들녀석이 닮을까봐 내심 걱정이 크다.-_-;;)
대전에 있을 무렵, 심대건 형님은 상남2인조, 반항하지마의 ‘영길’이 막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아바타 즉 화신이었다. 그와 함께 이곳저곳 쏘아다니던 추억은 세월이 지나도 아련하다.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고등학교 동문 대여섯이서 구린 국산오토바이를 타고 투어링 간답시고(겉보기에는 걍 동네 양아치, 폭주족) 장태산, 뭐 이런데를 갔다. 어느 기찻길 건널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을 지키시던 아저씨가 폭주족인줄 알고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와 심대건씨였나? 화이바를 후갈기시는 바람에 우린 서리하다 들킨 시골소년들 마냥 우르르 도망갔던 장면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습기 그지없다.
여하튼 오토바이를 타면서 즐겁고 좋은 기억도 많고 했지만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해 볼때 내가 오토바이를 좋아했던 것은 ‘오토바이를 타는 것’, ‘오토바이 자체’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aprilia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이탈리아의 명품 bike 메이커인 aprilia(이름도 예쁘지 아니한가? 아프로디테랑 비슷한 것이..)를 우연히 본 순간 한눈에 뻑 가버렸다. 혼다, 야마하, 스즈키 등 일본 메이커에서 생산한 리터급의 고성능 replica(흔히 말하는 뿅카, R카)가 많았지만 난 그런 놈들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카와사키 ZX7R만 빼고) 특히나 내가 좋아한 모델은 97~98년식 2 stroke RS 125 롯시컬러었다. 고양이처럼 치켜든 뒷태, 간지나는 롯시의 등번호 46, 세련된 곡선의 알루미늄 프레임, 어떻게 저런 화려한 원색을 조합하면서 촌스럽지 않고 세련될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감동적이다. (롯시컬러는 오토바이경주에서 F1이라 할 수 있는 motoGP에서 슈마허처럼 절대적인 일인자인 ‘발렌티노 롯시’가 aprilia 팀에 있을 때 생산한 제품으로 보통 그 디자인을 롯시컬러라고 함.) 난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니 정확히 말해서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할만큼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때는 살짝 맛이 갔었다. 결국 대용으로 한급 아래인 RS 50 롯시컬러를 억지로 사고 나서야 폭주는 멈추었다.
http://2.bp.blogspot.com/-jnKgJRjMu_o/TVW0mz0i7DI/AAAAAAAAAFs/CmHl8-H5XXE/s1600/800px-Aprilia_rs125.jpg
10년이 지나니 롯시 횽아도 aprilia를 떠난지 한참, 혼다, 야마하 등등을 떠돌았고 RS series의 후속 모델들은 점점 구려졌으며 급기야 환경오염 때문에 2 stroke bike인 RS는 aprilia에서도 주력기종에서 밀려나 벤치신세가 되었다. 곧 사라지지 않을까.. 난 이러고 있고 심대건 형님은 착실히 회사 생활하시는 것 같고…… 일상의 쳇바퀴를 돌다 우연히 마주친 aprilia에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상념에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