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야기 #3>최재우 선배님…
캐나다에 와서 왠 사람이야긴가 싶지만… 한국에서 정신없는 생활 속에서 각잡고 쓰기가 쉽지 않았는데 요즘 조금 안정이 되다보니 정리할 여유가 되는 것 같다.
생각보다 그와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되돌이켜보면 크게 세 가지 막(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1. 제1막
나는 중학교 때 ‘소 뒷걸음질 하다가 쥐잡는 격’으로 과학경시대회에 수상을 해서 대구시 대표로 전국과학경시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소 뒷걸음질은 괜히 겸손을 떨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나는 형 덕분에 중학교 수준에서 배우지 않는 ‘등가속도 운동’에서 공식이라든가, 빗면에서 삼각함수를 이용한 물체의 중력운동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스킬 정도만 갖추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런 것 몇 개 알면 경시대회 입상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 속에 담긴 뉴턴 역학의 깊숙한 수학적 의미는 알아 채지도 못했다. 심지어 형이 어렴풋이 그런 심오함을 알고 (아마 형도 거진 마찬가지였을 듯.. )나에게 알려주려고 할 때마다 화를 내며 그만하라고 …나는 그냥 1/2at^2만 외우겠다고 거부하였다. 여하튼 그렇게 뽑힌 12명의 대구시 대표 중학생들은 20세기 스타일에 맞게 어린이 회관 옆에 교육과학연구원이란 곳에서 대구시를 빛내기 위한 특별 교육에 투입되었다. 당시 교육을 담당하던 선생님들은 주로 과학고등학교 선생님들이셨는데 …..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간간히 과학고등학교에 무시무시한 선배들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셨다. 최재우란 이름도 거기서 처음 접했다. 12명의 전사들이 드디어 전국경시대회가 치루어지는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에 입성할 때, 마침내 최재우 선배님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다. (경시대회 고등학교 대표도 함께 서울에 올라가 숙식을 하며 경시대회를 치루었다) 빡빡이 스포츠 머리만 가능하던 당시 고등학생의 헤어스타일과는 달리 과학고의 상징인 덥수룩하게 기른 머리,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모식도에 대구과학고(TSHS, Taegu Science High School) 이니셜이 박힌 후줄그레한 티셔츠, 눈알을 뒤덮다 못해 광대뼈까지 침범한 거대한 금테 안경까지….. 그는 마치 김진명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실제 모델인 이휘소 박사님을 빼다박은 듯 하였다. 이후 나는 과학고 입시에서 비교내신제 폐지라는 찬스를 통해 또다시 운좋게 그의 후배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가보니 그는 물리 올림피아드 금상 수상 등의 기라성 같은 명성을 남기며 나 같은 범인(凡人)과는 이미 다른 차원이 인물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같은 셔츠를 입고 지나가셨지만 말을 걸어볼 수도 없었다. (여담이지만 Minje Kim를 포함한 12명의 중학생은 전원 전국대회에서 입상에 실패하였고ㅋ, 1명을 제외하고 모두 같은 고등학교에서 재회하였다.)
#2. 제2막
나와는 카테고리가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수년이 지나 의외의 장소였다. 당시 나는 기계공학을 공부하다가(공부를 한 건지, 아둥바둥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건지 모르겠다) 무작정 휴학을 하고 서울, 신림동 형의 하숙방에 몸을 의탁하고 지냈다. 과외 알바를 전전하면서 하면서 방황하던 시절, 최재우 선배님도 마침 그 인근 하숙방에 기거하고 계셨다. 그는 형과 동갑인데다 같은 과를 진학을 해서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고, 당시에는 병역대신 산업기능요원으로 회사를 다녔다. 몇 년 만에 만난 우리의 전설, 최재우 선배의 모습은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80년대 영화 고래사냥에나 나올법한 장발에, 거뭇거뭇 기른 수염….. 신림동 고시촌 이무기의 이미지에 완전히 드러맞는 모습으로 변모해있었다. 밥 때가 되면 ‘길모퉁이’ 분식에서 제육덮밥을 먹고, 저녁에는 치킨이나 탕수육을 시켜 맥주를 먹고, 가끔 기분 좋으면 엉터리 생고기 집에서 고기와 소주도 한잔하고, 탁구도 치고 그랬다. 써놓고 보니 우울하기 짝이 없구나… 아닌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주변이 비린내 나는 침울함으로 가득찼던 시기였던 것 같다. 대학에 가면 세상은 우리 것일 줄 알았는데 어느 구석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없었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주변에 방긋방긋 연애하는 사람도 없었다. 해소되지 못한 테스토스테론이 고여 썩어가고 있었지만 그걸 인식할 겨를도 없었던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녹두거리의 시린 추위와 ‘딱한잔’, ‘태백산맥’의 낭만은 바보같은 청춘도 감내할만큼 너른 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 최재우 선배님이 조금씩 형처럼 느껴졌다.
#3. 제3막
또 소 뒷걸음질 하다가 운좋게 의대에 편입을 해서 다시 그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나보다 한 해 먼저 본과 생활을 시작한 재우형을 통해서 새로운 분야, 새로운 공부의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나는 많은 도움을 얻었다. 마치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 이미 ‘재우필기’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그의 필기 원노트 파일은 당시 학우들 사이에서 엄청난 네임밸류를 가지고 있었으며, 나는 고등학교 후배라는 프리미엄 덕택에 감사하게도 그의 육성으로 본과 공부를 임하는 자세와 노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었다. 그의 필기를 보고, 그로부터 공부에 대해 배우면서 느끼는 점이 무척 많았다. 우선 그의 필기를 보면 그 내용이 단순히 교수님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데 그치지 않고, 본인이 생각과 구조에 비추어 본다는 점, 개념과 개념이 신경세포의 시냅스가 이어지는 것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스토리로 완결되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 이 형이 이래서 범인(凡人)이 아니었구나..’ 또한 새롭게 느낀 점은 그는 알고보니 치밀한 전략가이며 리얼리스트라는 사실이었다. 각 과목의 특성과 핵심을 주도면밀하게 미리 파악하고, 사전에 경험한 실패가 있었다면 철저하게 분석하여 대비하는 자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숨어 있는 노력과 함께 밑바탕을 굳건히 다지고 실전에 임하는 태도… 이순신 장군이 치밀한 준비를 통해 ‘이길 수 있는 전장만 택하여’ 전투를 치른 것처럼 말이다. 여하간 본과 4년 이라는 긴 시간 내내 그로부터 수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수역, 피부과에 계시는 재우형을 생각하면 나는 그가 저녁에 조용히 진료를 마친 후 피부과 의사의 위장을 벗고, 강남순환도로의 봉천터널로 들어가 터널 안, 비밀 통로를 통해 관악산 깊숙이 설치된 비밀 기지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곳에서 조국을 위해 핵무기를 설계하고 있거나 KF-21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거나… 아닌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그는 핵폭탄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이니까..
각설하고, 나는 ‘개과 고양이 이야기’에서 고양이처럼 감사한 사람만 보면 생선이 생각난다. 그래도 캐나다로 떠나오기 전에 선배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마침 농어 낚시를 다녀온터라 농어회를 맛보여 드릴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제가 또 열심히 다녀서 맛있는 생선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제 제 4막을 써보시지요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