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야기 #11> 겨울왕국의 난방 에피소드…

<캐나다 이야기 #11> 겨울왕국의 난방 에피소드…

(지지난주 극한의 추위에 겪은 집의 난방 고장에 관한 긴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방대하나 개인적으로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정리해봅니다.)

다음날 극한의 추위가 예보된 목요일 오후, 영하 30도의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방한장비를 꼼꼼하게 챙겨 뒷마당에서 설동을 만들고 있었다. 땀까지 뻘뻘 흘리며 눈삽질을 하던 중에 아내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별 일 아니겠지 하면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집의 보일러가 이상한 것 같단다. 설정해둔 실내온도 아래로 계속 기온이 떨어지고, 에어덕트에서 찬바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다음날인 금요일 새벽은 이번 추위의 절정이었고 마침 그 타이밍에 보일러의 고장이라….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재난상황이다. 보일러실에 내려가보니 보일러가 작동하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집 밖에 설치된 보일러 굴뚝에서도 공기가 오가는 기운이 느껴진다. 그런데 난방이 안된다…. 뭐가 문제일까? 사람을 부르자니 늦기도 했고 인건비가 비싼 이 나라에서 한국처럼 뚝딱 서비스를 부르기도 겁이 났다. 우선 고장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으니 거실의 보일러 조절패널을 만지작 거리면서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보일러와 별도로 설치된 거실의 가스난로는 정상작동을 하고 있었고, 온수도 공급되고 있었다. 한 가지 찜찜한 것은 보일러실 바닥에 물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몇 주 전, 보일러실에 갔을 때도 사방에 물이 떨어진 것을 보고 천정을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물이 떨어질만한 소스가 보이지 않아 의아했던 터였다. 여전히 그 원인은 찾지 못했지만 물이 보일러 위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여하튼 거실의 가스난로 앞에 앉아 유튜브에 올라온 온갖 영상들을 보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열역학과 유체역학까지 공부한 기계과 출신 아닌가…..

<이 지역 난방 시스템의 개괄>
-이 나라의 난방 시스템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사실 보일러라는 용어는 여기서 틀린 말이다. 물을 데워서 그 물을 바닥 안에 설치된 파이프로 돌려서 바닥을 데우는 우리 시스템과 달리 여기는 공기를 데운다. furnace 시스템이고 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데워진 공기는 집의 실내 공간 곳곳에 연결된 에어덕트로 공급이 된다. 거실에 있는 조정장치(thermostat)에 설정된 온도에 따라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멈췄다를 반복한다. furnace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on-off control을 한다. (기술시간에 배운 바이메탈 방식처럼)
-따라서 가스를 연료로 쓰는 별도의 온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온수기가 별도인 경우가 있으나 대체로 보일러에서 바닥난방과 온수를 같이 데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여기에 보일러실에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보일러실이라는 말은 잘못된 용어이다) 몇 가지 부가적인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첫번째는 가습기 (humidifier)이다. 사실 humidifier는 furnace 시스템의 일부로 봐야한다. 이곳은 자체로도 매우 건조한데다가 가열한 공기는 더욱 건조해서 그대로 공급하면 실내가 극도로 건조해진다. 따라서 furnace 시스템에 humidifier를 같이 붙여서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이번 이벤트에서 humidifier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두번째는 연수기 (water softner)인데 …. 한국과 달리 이곳의 수돗물은 센물, 즉 미네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바로 생활에 사용하기 불편하다. 그래서 연수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원리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소금을 이용해서 물속의 미네랄들을 뽑아내서 물을 말그대로 매끄럽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소금이 계속해서 소모되기 때문에 귀찮지만 정기적으로 보충해줘야 한다.


-우선 실내 가스 난로와 온수가 나온다는 점에서 집 자체의 가스 공급에는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보일러 앞에 설치된 패널을 열어 안쪽을 살펴보았다. 아랫쪽에 설치된 전자기판에서 불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점등하는 불빛이 있어 패널에 붙어 있는 설명서를 보니 그 코드는 그냥 에어필터를 교체하라는 단순한 내용으로 현재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유튜브에서 공부한 furnace의 작동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각 과정이 step-by-step으로 이루어지고, 마치 프로그래밍 코드처럼 한 스텝이 모두 완료되어야 다음 스텝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step 1 : thermostat의 설정에 따라 제어부에서 불을 붙이라는 명령
step 2 : 우선 연소된 가스를 배출시키는 inducer 펌프가 제일 먼저 on (모터 돌아가는 위잉~ 소리가 시작)
step 3: inducer 펌프에 연결된 pressure switch가 on (역할은 safety를 위해 역압력이 걸리지 않는지 감시…. 자세한 설명은 생략)
step 4 : 연소실 (combustion chamber) 안에 있는 ignitor가 on (노란 빛을 내며 가열됨)
step 5 : 솔레노이드로 작동하는 gas valve 가 열림 -> 파란 가스 불꽃이 연소실에서 점화
step 6 : 아래쪽 Air blower가 작동-> 바깥의 찬공기를 끌어들이고 가스버너를 통해 데워서 온 집안으로 공급

-자 이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점검을 해보자. 우선 보일러 내부를 살펴보니 앞서 언급한 물기가 보일러 안까지 침습되어 있었다.
-유튜브에 따르면 가장 흔한 furnace 이상 중에 하나는 step 2에서 inducer 펌프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였다. 먼지가 끼거나 다양한 이유로 inducer 펌프가 돌아가지 않으면 그 다음 스텝으로 진행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모터의 먼지를 털어내고 돌려주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inducer 펌프 전원에 물기 같은 것들이 있어서 모두 닦아 내고 드라이어로 말렸다. furnace 전원을 올리자 모터가 돌아가고 뒤어어 ingnitor까지 노랗게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였다.
-유튜브에서 언급되는 또 흔한 문제 중 하나는 flame sensor의 오작동이다. furnace에는 다양한 safety 기능들이 장착되어 있는데 (step 3, pressure switch와 같이)… 그 중에 하나가 연소실에 설치되어 있는 flame sensor이다. 문제는 이게 가끔 오작동을 해서 gas valve를 꺼버린다는 것이다. 이 경우 파랗게 가스화염이 점화되었다가 몇 초 이상 유지를 못하고 바로 불꽃이 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해결책은 sensor를 탈거하고 깨끗한 천으로 닦고 다시 장착하면 또 쉽게 해결 된다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교체)
-여러차례 시험해봤으나 연소실 안에 파란 화염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gas valve의 문제이다. Gas valve는 아랫쪽의 전자기판과 연결되어 솔레노이드를 통해 gas를 공급하기도 하고 꺼주기도 하는 장치이다. 여기에도 물기가 묻어 있어서 닦고 드라이로 말려주기를 수 차례… 그러나 아무리 해도 화염이 일어나지 않았다.
-패딩을 껴입고 지하에서 삽질을 했거만… gg…… 더 이상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미 시간은 새벽 2시를 넘어 3시를 향하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전기장판, 이불, 오리털 침낭을 동원해 잠을 자고 있었고 실내기온은 10도 아래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2층 화장실의 물이 얼어서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다행히 전날 저녁 집주인에게 메일로 연락을 드렸더니 신속하게 furnace 설치하신 기사분 연락처(교민분)를 주시면서 비용 걱정하지 말고 수리하라는 회신을 주셨다. 다음날 아침 실내온도는 5도 가까이 떨어졌고, 업무시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강추위가 오면 이런 문제가 많이 생기는지 엄청 바쁘신 것 같았다.
-거실 난로 앞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떨던 중 오후에 드디어 기사님이 오셨다. 나는 지난 밤의 온갖 삽질을 설명드렸고 결론적으로 gas valve의 문제같다는 의견을 드렸다. furnace를 자세히 살펴보신 기사님 의견도 동일…. 결국 gas valve를 교체해야 한다는 결론이 이르렀고 몇 시간 후에 새 부품을 들고 찾아오셨다.
-교체 후 아니나 다를까 새파란 나타난 화염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기사님은 나에게 plumber해도 될 것 같다는 칭찬을 해주셨다. 다만 물이 새서 gas valve가 고장났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셨다. 추위가 심해지면 furnace에 overload가 걸리고 자연스럽게 노후화된 gas valve가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부가적으로 늦은 시간까지 지하에 시간을 보내며 물이 떨어지는 소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닌 수도관이 연결된 humidifier에서 간헐적으로 상당한 물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기사님이 이 또한 문제라 수리가 필요하지만 지금 시급한 문제는 아니니 나중에 상의하자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셨다.
-추울수록 바빠지시고, 바쁘게 찾아가시는 곳이 모두 추운 곳 (furnace가 고장난 곳) 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Humidifier의 물공급 밸브를 잠궈두었기 때문에 당장은 물이 샐 이유가 없다. 물을 잠근 이유는 기사님 말에 따르면 영하 20도 이하에서는 Humidifier를 작동시키면 실내 공기의 습도가 창문에 다 응결되어 얼어버리기 때문에 본래 잠그는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 강추위 이후로 일주일 이상 영하 20도 주변을 왔다갔다해서 손을 볼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온몸의 피부가 건조해져 가려움증이 올라왔다.
-이번 주들어 날씨가 조금 풀리고 이제 Humidifier를 손 볼 시간이 되었다. 역시 유튜브를 통해서 Humidifier의 구조를 공부해보니 생각보다 간단하였다.

step 1: 우선 furnace에서 output으로 나온 공기 (뜨거운 공기) 가 bypass를 통해 Humidifier로 들어온다.
step 2: Humidifier안에는 evaporator라는 장치가 있어서 거기 위에 물을 흘러내려 적시게 되어있고, 들어온 공기는 그 evaporator를 거쳐 습기를 머급고 다시 furnace로 공급되는 input air에 합류한다.
step 3 : evaporator에 물공급은 물공급 라인이 연결된 솔레노이드 밸브의 on/off로 조절된다. furnace output 에어덕트에는 솔레노이드와 연결된 습도조절계가 있고, 그 셋팅에 맞추어 물공급은 역시 on-off control을 한다.
step 4: evaporator를 적시고 남은 물은 아래 drain을 통해 빠져나가 배수구로 연결된다.

-외관상 솔레노이드 밸브나 배관에서 물이 샐 만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Humidifier의 덮개를 떼고 살펴보니 물은 evaporator 에서 넘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튜브에 따르면 evaporator안에 종이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그물망(evaporator pad)이 들어 있는데 오래 사용하면 이곳의 수질 덕택에 미네랄 같은 것들이 침전되고, 또 소재 자체도 닳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교체를 해야 한단다. 아니나 다를까 evaporator pad는 침전된 물질들로 인해 회색빛으로 변해 있고 조금만 쌔게 잡아도 바스러질만큼 낡아 있었다.
-기사님께 상황보고를 하고 혹시 evaporator pad를 교환하면 되냐고 여쭤보니… 빙고~ 당장 동네 철물점 Home Depot로 달려갔다.
-사이즈에 맞는 evaporator pad 찾아 교체하고 수도 밸브를 여니 확연히 물이 새지 않고 에어덕트에서는 습기찬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자… 이제 다음 문제는 뭘까?

<여담>
1) 처음에는 캐나다 난방 시스템을 보고 허접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추운동네에 꼴랑 이걸로 해결이 될까? 그러나 살아보니 나름 장점이 있다. 실내공간이 큰 상황에서는 furnace로 공기를 데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우리처럼 바닥을 데우는 형태는 실내공간이 좁고 밀집된 상황에서 적절한 난방방식인 것 같다.

2)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지만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쾌감이 있다. 임상에서 진단을 정확히 맞추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오래 전 존경하는 정선근 교수님께서 미국 연수 시절에 ‘Car talk’이라고 차에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으시면서 임상진단을 밝히는 것에 큰 영감을 얻으셨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furnace 문제를 경험하며 정교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3) 심혈관 중재술을 하시던 심장내과 교수님께서는 항상 본인을 plumber라고 칭하셨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아주 좋은 analogy 같다. 만약 북미 추운 곳으로 연수 오시면 아주 잘 적응하실 것으로 예상된다.

4) 동네 철물점이라고 했지만 간단한 공구나 못, 사포 같은 것을 파는 우리나라 철물점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Home Depot, Lowe’s 같은 곳에 가보면 어마어마하다. 집 한채를 다 지을 수 있는 온갖 자재들이 쌓여 있다. 왠만한 문제는 직접 해결하는, 또 해결해야만 하는 이곳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공간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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