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야기 #12> 캐나다의 의료

<캐나다 이야기 #12> 캐나다의 의료

시기가 민감하여 조심스럽다. 다만 이곳에 와서 가장 열심히 들여다보고 탐문하려고 했던 부분이 아무래도 이쪽 내용이라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 한번 정도 짚고 가야할 것 같다. 한 가지 미리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의료인이긴 하나 의료제도 전반에 걸친 전문가는 아니며, 정식으로 (문헌 수준에서) 이 나라의 의료제도를 살펴본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소소한 경험, 병원을 다니면서 만나는 여러 현지인들의 이야기, 주위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얻는 감상 정도로 제한하자.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가 매우 좋다는 (특히 미국에 비해서) 이야기는 이제 식상한 테마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미국과 길다린 국경을 맞대고 바로 지척에 있으면서, 경제규모와 인구수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땅덩어리는 무지막지하게 차이 나지만) 캐나다의 의료제도는 미국과 또 사뭇 다르다. 기본적으로 영연방국가라서 그런지 영국의 NHS제도와 흡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의료의 공공성에 더욱 치중하고, 가정의학과 의사를 일차 진료의로 국민들을 묶어 두고 있는 인두제 등등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전문의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들고, 담당 가정의학과 의사의 진료 역시 쉽지 않으며 왠만큼 아픈 것은 약국에서 스스로 약 사먹고 버티는 현실이 희한하게 제도의 극단에 서 있는 미국과 유사하다. 한국의 놀라운 접근성, 신속함, 비교적 저렴한 가격 등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내가 있는 알버타 주는 주정부가 관장하는 Alberta Health Service (AHS)라는 공공기관이 대부분의 의료를 책임진다. 세금으로 운영되며 거의 공짜(약간의 자기 부담금도 발생한다고…)로 대부분의 질병을 치료 받을 수 있다. AHS는 캘거리와 알버타 주에 있는 대부분의 의료기관을 거느리고 있고, 따라서 그 의료기관에 일하는 의사들은 AHS 소속 반-공무원인 셈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공공의료기관인 것은 아니고 개인클리닉을 열어 행위별수가(fee for service)에 준해 AHS로부터 지불을 받는 곳도 있다. 어쨋거나 의료는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이곳 주민들에게 명확하게 박혀 있다. 따라서 의학적 문제의 패턴, 우선순위, 의료자원의 배분 등에 대한 현실적 관점이 우리나라와 꽤 다르다.

대표적으로 우리와 차이가 나는 의료분야가 ‘외상’이 아닐까 한다. 약국에 가서 수많은 종류의 약품들 중 복용할 약을 직접 고를 때는 마치 여기가 무의촌처럼 느껴지지만 응급상황을 요구하는 외상이 발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앰뷸런스, 응급헬기 이송 등이 아주 신속히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의 응급실은 말그대로 응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셋팅되어 있다. 응급처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은 철저히 우선순위에서 밀리도록 체계화되어 있다.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라 민원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그래봐야 본인들의 의사가 씨알도 안 먹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응급이 아닌 왠만한 의학적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유도되는 것이다.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외상 분야에 대해 더 잘 이루어지는 것 같다. 여기 재활의학과 레지던트 교육을 참관중인데 잠깐이지만 외상관련 재활에 대한 교육이 우리보다 강화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한국의 외상의료와 응급의료의 내재된 수많은 문제점들을(일일이 언급하지 않겠다) 생각하면 때론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정말로 누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는 시나리오에선 냉정하게 캐나다 의료가 우리나라보다 한수 위라고 판단한다.

나의 연수에서 주 target 질환이자 응급, 중증의 대표적인 질환인 뇌졸중의 경우 캘거리 시내에서 발생하는 뇌졸중 환자의 90%는 모두 내가 있는 Foothills 병원(3차 상급종합병원)으로 집중되어 각종 시술을 포함한 급성기 적절한 처치를 받는다. 이후 발생한 기능적 문제에 대해 뇌졸중 재활 프로그램이 다양한 루트로 연계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비용은 AHS에서 커버를 한다. 한편 그렇기 때문에 의료전달체계에서 환자의 선택권이 대폭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의료진이 퇴원, 전원 등에 대해 결정권을 쥐고 있다. 즉 환자 혹은 가족이 퇴원 여부를 정하고 재활병원 선택하는 등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선택지가 우리나라에 비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곳 의료시스템의 취약한 점도 여럿 감지된다. 암과 같은 질환의 경우 경우 우리나라의 높은 접근성과 검진시스템(다소 기형적이지만), 빠른 진료체계는 이곳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우월하다. 가벼운 근골격계통증, 안과/이비인후과 같은 마이너계열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어마어마한 전문 진료 인프라는 따라올 수가 없다. 전자는 대형병원 중심의, 후자는 개원가 중심의….. 주체는 다르나 유사한 시장경제논리 덕분에 이루어진 체계라고 생각된다. 어쨋거나 사용자 입장에서 좋은 것이니 우리나라 시스템도 꽤 훌륭해 보인다. 공급자의 ‘자발적인’ 피땀과 ‘자기파괴적인’ 소모를 잊지말자. 그리고 이곳은 거대한 땅덩어리 때문에 의료의 공급과 접근성의 조건이 다르고, 제도를 단순히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음을 주지해야겠다.

이러한 캐나다의 의료시스템도 최근에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로 캐나다 연방정부가 그동안 시행해온 이민, 난민을 중심으로 한 인구유입 정책이 언급되고 있다. 캐나다는 원체 이민을 열심히 받는 나라였지만 십수년 전부터 이곳도 출생률 저하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민정책을 시행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인구유입에 맞추어 교육이나 의료인프라를 갖추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나를 초청해준 Sean은 본인이 캘거리로 온 2008년에 비해 지금의 병원과 의료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이야기를 토로한다. 문제는 이민정책을 연방정부가 좌지우지하고 교육과 의료는 전적으로 주정부에 일임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크다고 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기존의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구시대의 목가적인 환경에서는 이상적인 체계처럼 느껴진다. community를 중심으로 각 community에는 교회가 있고, 목회자가 있고, 그리고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가 있고…… 대학에 의사들은 다소 속세와 동떨어져 본인에게 모이는 다소 희귀한 질병들을 집중적으로 만나고, 치유법을 연구하고… 아름답지만 이러한 잣대가 우리의 현실과는 맞지 않으며 우리의 시스템이 이들에게 맞지도 않다. 문제는 캐나다의 현실에서도 점점 맞아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침소봉대할 필욘 없을 것 같다. 변화는 어느 누구에게나, 어떤 사회든지 올 수 밖에 없다. 천년만년 지속되는 것은 극히 드물다. 변화 자체를 터부시하기 보다 그것을 직시하고 거기에 맞추어 잘 대응해나가는 수 밖에….

<여담>
-초기에 캐나다로 이주해온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작금의 현실을 맞딱드리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된다.

-비슷한 조건인데 미국과 캐나다는 이민정책, 이민자를 수용하는 관점에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현지인들과 간혹 대화를 해보는데 아직 명확하게 정리가 안된다.

-캐나다인들 특유의 친절함의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목가적인 환경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따라서 앞으로는 점점 이러한 친절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민자를 수용하기에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어려운 다른 누군가를 보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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