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管子)..
책을 읽고난 후기는 가급적 잘 안 올리려고 하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지금 시점에 한번 정도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제목은 ‘관자(管子)’라고.. 공자, 맹자, 노자와 같은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무슨무슨 자.. 중에 한 분이다. 생소할 수 있지만 익숙하게 들어봤을 ‘관포지교(管鮑之交)’ 에 ‘관’이 관중, 혹은 관이오이고, 이 책 관자와 동일 인물이다. 간단히 그에 대한 배경설명을 하자면, 춘추시대에 패권국가인 제나라의 재상으로 소위 말하는 춘추오패 중 1번인 제환공(齊桓公) 곁에서 제나라를 패권으로 이끄는데 일등공신이 바로 이 관중, 관이오이다. 즉, 혼란스러운 고대중국시대에 국가를 이끄는 실무에 통달한 명재상이 되겠다. 책 관자는 그가 남긴 말, 제환공과의 대화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무려 본문만 850페이지 가량된다. -_-;;; 읽지도 못하는 한자 원문이 같이 있으니 그것을 제한다해도 500페이지는 족히 넘을 것이다. 시작할 때는 까마득했지만 연구실을 오가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상태였다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다 읽고 나서 드는 첫번째 생각은 서문에서 역자도 언급하듯 조선 시대에 유교, 성리학을 중심통치 이념으로 삼지 않고 이 관자의 텍스트를 실무적으로 중용했다면 어땠을까? … 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목민’은 관자의 한 chapter 이름이다.) 배경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국가간의 외교, 패권, 정치, 산업, 토지정책, 경제, 조세, 군사, 복지, 보훈 등등을 망라한다. 무려 2700년 전의 내용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며,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원칙이 실리적이고 명징하다. 인의예지신이니 효니 충이니 하는 뜨뜨미지근한 명제들로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조율한다. 예나 지금이나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로 시작되는 일들은 대체로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결말로 끝나기 쉽다. 또한 관자의 문제해결 방식은 지극히 유연하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아집이나 무소불위의 원칙 같은 것 없이, 때에 맞추어 색깔을 바꾸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래 몇 가지 내용들을 보자.
<백성은 이로움이 있으면 오고, 해로움이 있으면 떠난다. 백성이 이익을 좆음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는 것과 같다. >
<환공이 물었다. ‘장인을 불러 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급여를 세 배로 올려주면 천 리가 멀다 하지 않고 올 것입니다.’>
<환공이 관자에게 물었다. ‘물가 정책을 펼 때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물가 정책에 정해진 법칙은 없습니다. 물가 정책은 물자의 가격을 한 번은 올리고 한 번은 내리는 데 있으니, 고정시킬 수 없습니다.>
특히, 흥미롭게 살펴본 대목은 고대국가의 복지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재정, 조세 부분이다. 복지라하면 흔히 현대국가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쉬지만 관자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이 당시에도 복지가 상세히 논의된다. 심지어 지금의 개인회생절차와 비슷한 일화도 나와있다. 이러한 모든 행위들의 바탕에 선(善), 자비심, 왕의 애민정신 같은 뜬구름 잡는 논리를 제시하지 않고 그러한 행위가 결국 국가의 부유함, 혹은 (당시 기준으로는)왕권의 강화, 패권에 선순환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설파한다. 지금도 복지=포풀리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2700년 전의 관자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성이 원하는 네 가지 욕망을 채워주면 멀었던 사람도 저절로 가까워진다. 반대로 백성이 싫어하는 네 가지(근심과 노고, 가난과 천함, 위험, 후사에 끊기는 것)를 행하면 가까웠던 사람도 배반한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주는 것이 도리어 받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이다. >
<이른바 ‘자유(慈幼)’란, 무릇 성읍과 국도에 모두 장유라는 관원을 파견한다. 자녀가 있는 백성이 그 자식이 어리고 나약하다고 기르는데 힘이 부쳐 누가 되는 사람이면, 세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는 부인의 세금을 면제하고, 네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는 집안 전체의 세금을 면제하며, 다섯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는 보모를 붙여주고 두 사람 분의 음식을 주며, 다 자라면 이를 멈춘다. 이를 ‘자유’라 한다.>
<이른바 양질(養疾)이란, 무릇 성읍과 국도에 모두 장양질이라는 관원을 파견한다. 귀머거리, 맹인, 벙어리, 절름발이, 반신불수, 두 손이 오그라들어 펴지 못하는 등의 병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은, 나라에게서 거두어 질관에서 보호하며 음식과 옷을 제공하고, 이는 죽을 때까지 계속한다. 이를 ‘양질;이라고 한다.>
<군주께서는 자식이 전쟁에 나가 전사하여 부모가 홀몸이 된 사람이 있는지 살펴서, 조정에서 반드시 책임지고 장사지내줍니다. 옷과 이불 셋을 주고 관곽을 반드시 3촌으로 하여, 상례를 고향의 관리가 감독하게 하고, 공공묘지에 안장합니다. 그 부모가 키울 다른 아이가 없으면, 조정에서 반드시 그들에게 말 한 필로 하루동안 갈아엎을 수 있는 땅을 줍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희생하여도 생활고가 없을 것입니다.>
<나라의 양식 가격이 앉아서 40배로 오를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40배로 오른 양식을 내어서 고아와 과부들을 구휼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을 거두고,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과 자식이 없는 사람을 돌보고, 사람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을 없애서 길바닥에서 굵어 죽는 것을 막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병사들은 전쟁에서 먼저 나가 싸우고 구차히 삶을 구하지 않고 용감해지니, 죽거나 다친 이를 살펴보면 죽은 사람이 절반을 넘을 것입니다. 이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병사들이 싸움을 좋아하고 죽음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라, 물가 조절 정책의 작용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
<군주가 부유한 사람에게는 덜어낼 수 있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보태줄 수 있기 때문에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군주가 부유한 사람에게는 덜어내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보태주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작금의 의료사태와 관련해서 관자에서 지혜를 얻을 수 없을까? 민감한 부분이라 조심스럽지만 책을 읽으며 한국의 상황이 생각나 잠깐씩 멈추었던 파트를 첨부한다. 해석은 각자의 몫….
<나라를 잘 다스리는 군주는 백성을 부린다고 말하지 않고, 백성이 부려지지 않을 수 없도록 합니다. 백성을 함부로 쓴다고 말하지 않고, 백성이 쓰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백성 가운데 쓰이지 않고 부려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환공이 또 관자에게 물었다. ‘ 어떤 사람이 나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어째서 여러 재능 있는 인재를 통제(官->관리통제의 강제성을 뜻함. 즉, 그들을 강제로 통제하여 일을 시킨다는 뜻)하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관자가 대답했다. ‘여러 재능있는 인재를 통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환공이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혜를 다하게 하고, 모사는 그 계략을 다하게 하고, 장인은 그 기교를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그의 말은 잘못되었습니다. 녹봉이 적으면 병사들은 목숨을 바치려 하지 않습니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병사들은 상을 가볍게 봅니다. 물가가 떨어지면 병사들은 구차해지고 요행만 바랍니다. 이 세 가지 태만함이 나라에 있으면, 어떤 방법을 쓰겠습니까? 양식의 7할을 나라의 창고에 저장하고 3할을 백성에게 유통시키면, 모사는 그 계략을 다하고, 지혜로운 선비는 그 지혜를 다하고, 용감한 병사는 그 목숨을 다할 것입니다. 그가 말한 것은 망언입니다. 물가 조절방법과 통하지 않으니, 망언입니다.’ >
제자백가시대의 여러 텍스트들에 대한 나의 인상은 듣기 좋은 말, 처세에 도움이 되는 담론, 서양 고전철학의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면들에 비해 다소 부실한 엄밀성…정도 였다면 관자를 통해서 이런 생각이 좀 바뀌었다. 패권을 꿈꾸는 최근의 중국은 아마도 이 텍스트를 아주 깊게 연구하고 있을 것 같다. 2017년 사드사태와 유사한 사례가 관자에 이미 여러 번 나온다. 좋든 싫든 이들과 옆에서 같이 살아아 하는 우리나라는 이 고전에서 그나마 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에도 여러 함정이 존재한다. 이 텍스트들이 실제 관자가 했거나 쓴 내용이라기 보다는.. 후대의 첨삭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쓸데없는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또한 현재의 민주와 공화의 개념과 달리 왕정체제, 농업생산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고대국가를 전제로 이루어진 내용들이니 다를 수 밖에 없다. 고전의 내용을 현대의 시각에 맞추어 필터링하지 않고 교조적으로 적용할 때 비극이 발생하곤 한다.
(한국에서 몸고생, 마음고생하는 지인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다들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