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three

심장내과에 입원해 있는 처음 만났을 때는 그 환자는 아직 콧줄과 소변줄을 끼운 상태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다. 환자의 병력은 의무기록을 통해 대략적으로 파악을 해두었다. 집에서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화장실 문앞에 쿵하고 쓰러져서 놀란 아내가 119연락을 하고, 연결된 응급구조사의 지도하에 아내가 심폐소생술을 먼저 시작했다. 119 요원이 현장에 도착해 환자를 이어받고 ACLS(Advanced Cardiovascular Life Support, 전문심장소생술)를 시행하였다. 병원으로 가는 앰뷸런스 안에서 환자의 순환은 회복되었고, 무사히 중환자실까지 들어왔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심폐소생술의 핵심이 되는 흉부 압박은 생각보다 매우 거칠다. 가슴 깊숙이 있는 심장을 충분히 압박하기 위해서는 거의 5~6cm 정도 깊이로 짓눌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갈비뼈나 복장뼈가 부러지는 일은 흔하다. 이 환자도 순환은 회복되었지만 다발성 늑골 골절과 그로 인한 기흉, 혈흉이 동반되었다. 심한 경우 흉관을 삽입해야 하지만 우선 중환자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다시금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이 멈추었다. 추정되는 원인은 긴장성 기흉(Tension Pneumothorax). 의학드라마에서 주로 나오는 초응급 상황이다. 폐나 가슴벽의 상처를 통해 공기가 흉막강(폐와 가슴벽 사이 공간)으로 계속 들어오는데 체크 밸브(Check-valve)’ 현상 때문에 공기가 계속 쌓인다. 쌓인 공기의 압력은 폐를 찌그러 뜨리고 흉강내의 장기들을 밀어내어 급격한 심정지를 일으킨다.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바늘을 가슴에 꽂아 공기를 빼어내고 다시 심폐소생술…. 그리고 제세동기까지 수차례 수행했음에도 순환회복이 되지 않았다. 결국 심장이나 폐가 제기능을 완전히 상실 했을 때 최후의 수단인 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체외막산소공급)까지 설치하였다. 심장이 멈추면 뇌로 가는 혈류가 멈추고, 뇌의 신경세포들은 피가 멈춘 시간만큼 죽어 나간다. 이 환자도 뇌손상의 여파인지 경련 증세가 이어져 항경련제를 함께 투약하며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의 시간을 이어나갔다. 천운이었는지 두번의 큰 위기를 무사히 이겨내고 환자는 ECMO까지 뗀 채 일반병실로 올라왔다. 재활을 위해 의뢰되어 환자와 보호자를 만난 나의 첫 마디는 ‘어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멀리까지 갔다 오셨습니다.’였다. 물론 이 당시만 해도 환자는 아직 나의 말을 알아들을 형편이 아니었고, 보호자인 아내만 격하게 공감을 표하였다. 

첫 만남에서 나는 꼼꼼하게 신경학적 진찰을 수행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잠재된 뇌세포의 손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로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이라고 부른다. 비록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의외로 검진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꽤 있다. 사지의 심부건반사, 각종 병적 반사를 통해 우선 운동신경계의 이상 유무를 빠르게 살펴본다. 얼굴표정, 안구운동, 외부환경에 대한 주의집중 등 여러가지 것들을 통해 이 환자의 뇌상태를 추정해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가장 중요한 운동신경계의 이상소견은 뚜렷하지 않았다. 다소 움직임이 느려지고 둔해진 정도일 뿐, 운동에 핵심 신경계인 피질척수로의 이상을 시사하는 징후는 보이질 않았다. 중환자실치료의 여파로 환자의 몸에 달려있는 소변줄과 콧줄이 아마 환자와 보호자가 보기에는 가장 거슬리는 것들일 것이다. 재활의학과로 옮기게 되면 우선 이 부분들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재활목표가 될 것이고, 이 경우 관을 제거하는 일은 아마 분명히 함께 재활하는 기간동안 가능할거니까 안심하시라는 말을 보호자에게 전하였다. 어차피 환자와는 대화에 많은 제한이 있기 때문에 환자의 아내분을 따로 병실 밖으로 모셔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호자가 보시기에 환자분은 어떠신지? 아내가 말하기에 여전히 섬망으로 보이는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특히 기억력 저하가 두드러진다고 하였다. 쓰러지기 전 후 뿐만 아니라 수 개월 전의 기억까지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보호자에게 지금 환자와 같은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며, 재활의학과로 옮기면 그 부분도 자세히 살펴볼 것을 약속하였다.

뇌로 피가 잘 가지 않는 상황, 소위 말하는 뇌의 허혈이 발생했을 때 뇌세포가 겪는 어려움은 뇌의 모든 세포들에게 동등하지 않다. 뇌 안에도 다양한 종류의 세포들이 있다. 신경계 기능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세포 (Neuron) 뿐만 아니라 뇌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교세포 (Glial Cell)이라고 불리는 여러 세포들이 함께 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산소와 영양분을 사용하는 뇌답게 이를 공급하기 위한 혈관세포들도 큰 축을 차지 한다. 허혈이라는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중에서도 신경세포이다. 신경세포는 산소와 영양분을 주로 소모하는 핵심 소자이며, 따라서 허혈 충격에 가장 예민하게 무너진다. 세포 수준에서 그렇다면 조직 수준에서는 어떨까? 뇌의 여러 부위들 중에서도 신경세포가 밀집된 영역이 허혈에 가장 취약하다. 뇌에서 신경세포는 주로 피질이라고 불리는 뇌의 껍데기 부위에 모여 있다. 물론 기저핵이라고 불리는 뇌의 심부에도 신경세포가 집적되어 있는 구조가 존재한다. 이런 부위들이 심장이 멈추고 뇌로 피가 가지 않을 때 가장 쉽게 손상된다. 그 중에도 측두엽 내측에 있는 해마(Hippocampus)라고 불리는 부위는 기억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장소이다. 단면이 마치 롤케익처럼 생긴 이 부위는, 화가를 꿈꿨던 신경과학의 아버지 산티아고 라몬 카할이 직접 은염색한 슬라이드를 보고 도해로 옮겨놓은 그림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에릭 켄델 처럼 기억이라는 독특한 신경작용에 매료된 수많은 신경과학자들이 평생을 매달려온 바로 그 해마…… 이 환자의 해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재활의학과로 과를 옮겨 다시 한번 환자의 정보를 꼼꼼하게 보았다. 아직 뇌MRI영상은 찍지 못한 상태였다. MRI를 찍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을 폐쇄된 MRI 튜브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한다. 이 환자처럼 아직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검사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꼭 필요하다면 진정마취를 해서 촬영할 수 있다) 심장 문제 때문에 심장 MRI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MRI 검사는 재활이 한창 진행되던 중반에서야 촬영할 수 있었다. 판독 결과는? ‘No definite evidence of hypoxic-ischemic encephalopathy’… 저명한 기억 장애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해마에는 특이소견이 없었다. 이런 상황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비록 MRI영상에서는 뚜렷한 이상 소견이 없다고 하더라도 세포수준에서 미세한 뇌세포 기능장애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정찰위성이 매일 서울 시내의 모든 거리와 집들을 사진을 찍어 조사한다고 하자. 관악구에 일시적인 정전이 발생하였는데 그로 인해 여러 가정과 사무실 등에서 일부 예민한 전자제품 문제, 냉장고에 음식이 썩는 일 등이 발생했다고 해서 정찰위성 사진에서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상당히 긴 시간동안, 완전한 정전이 지속된다면 사진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여하간 환자를 위해서는 좋은 소식이다. 최소한 두드러진 해마의 허혈성 조직 손상은 없는 것이다.

사실 이 환자의 재활과정을 함께하면서 내 머리속을 채운 이야기는 해마와 기억과의 상관관계가 아니었다. 여전히 환자가 올바른 반응을 못하던 시기에 보호자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뜬금없이 듣게 된 이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오히려 화두처럼 생각에 들러붙었다. 환자가 쓰러지기 몇 개월 전, 매우 아끼던 둘째 아들이 집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단다. 놀랍도록 담담한 표정으로 아내는 “이 사람은 지금 둘째가 하늘나라 간 걸 기억을 못해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라는 말씀을 넌지시 꺼내셨다. 이게 무슨 일인가? 과연 이 환자의 기억을 다시 되찾는 것이 필요할까? 오히려 고통만 가득한 것이 아닐까? 한걸음 더 나아가 이 환자분이 차라리 심장이 멈추던 그때 세상을 떠났다면…. 오히려 이 생의 고통이 멈추는 일이 아니었을까? 재활의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초기에 13점 밖에 안되던 간이정신상태검사도 24점(30점 만점)으로 상승했고, 일상생활동작점수도 14점에서 87점 (100점 만점으로 87점이면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스스로 수행 가능한 수준)으로 좋아졌다. 몸에 달려 있던 두 관도 약속했던대로 모두 제거하였고, 침상에서 나오지 못하던 상태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정도가 되었다. 다만 여전히 둘째 아들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 채로 퇴원을 하였다. 팀회의에 함께 환자를 재활해주신 멤버들과 모여 회의를 하며, 말미에 환자의 사연을 공유했다. 모두 말을 잊지 못한채로 순간 숙연하게 침묵했다. 이 와중에 의심이 많은 나는 너무나 담담한 아내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외래에서 만나뵙고 조심스럽게 괜찮으시냐고 여쭤보았을 때, 그제서야 이 분도 강한 어머니, 아내의 역할을 잠시나마 벗고, 진한 눈물을 흘리셨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 신은 결국 인간의 숙명인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에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죽음이 과정이 되고, 그로 인하여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와 합일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죽음을 두려워해야할까? 그 지극한 엑스터시를 진정으로 믿고, 꿈꾼다면 죽음인들 무슨 대수일까? 이것 하나만으로도 신이 인류에게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거꾸로 인간이 있고, 죽음이 있다면 신이라는 개념은 영원히 함께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신이라는 존재 없이도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예외가 있다면?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참척의 고통일 것이다. 내가 죽음으로써 내 목숨보다 소중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아이와 다시 만나고, 또 단 한 순간이라도, 끌어안고 얼굴을 비빌 수 있다면 부모는 기꺼이 행복하게 죽음에 이를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마땅히 죽음을 이겨낼 것이다. 

‘기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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