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백록담에 이어서 올해는 어디를 갈까? 남한에서 가장 높은 백록담을 다녀왔으니 이제는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다는 지리산 천왕봉이 어떨까?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천왕봉 일출… 말로만 듣던 그 지리산 종주… 이제 해볼 때가 되었다. 3월에 울산에 강의하러 내려갔다가 정현이 형을 만나 말을 꺼내봤다. 큰 아들 은규도 데리고 한번 도전해봅시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힘든 일인지….
실질적인 준비는 7월 대피소가 열리는 6월 1일이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코스는 성삼재에서 출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경로로 잡았다. 어려운 지점은 중간에 머물 대피소를 어디로 잡느냐였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천왕봉 오르기 전날 반드시 장터목 대피소에서 자야하는 일정이었다. 다만 성삼재에서 장터목까지 약 28km을 어떻게 갈 것이냐의 문제였다. 하루만에 주파하기는 상당히 힘든 코스이고 그렇다고 중간에 다른 대피소를 하루 더 묵으며 2박 3일을 가자니 세상에서 젤 바쁜 아이들 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고심 끝에 젊음(?)을 믿고, 1박 2일 코스로 정했다. 장터목 대피소만 딱 하루 예약하면 되는 상황이라 예약이 열리자마자 신청을 했는데 운이 좋게 추첨에 당첨 되었다. 다가오는 날짜를 기다리며 정현형과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몸을 좀 만들어야할 것 같아서 운동도 하고, 식이조절도 하려고 했는데 맘대로 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애초에는 집근처 강변역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바로 성삼재로 가서, 거기서 정현형네를 만나 출발하려고 했으나 서로 짐도 같이 체크해야 할 것 같고, 여러가지 이슈가 있어 숙소가 위치한 백무동 (종주의 도착점)으로 아이들과 출발 전날 짐을 챙겨들고 시외버스에 올랐다. 지리산 자락 함양에 다다르니 바위가 웅장하고 물이 참 좋다. 해가 질무렵 백무동에 거의 다다르니 저멀리 높은 지리산 능선에 석양에 비춘 번쩍이는 포스트가 보인다. 이리저리 지도로 판단해보니 그곳이 바로 장터목 대피소로 추정되었다. 내일 저녁은 우리가 저곳에 있게 되는 것이다. 후아…… 숙소에서 정현형네와 합류하여 식당 겸 숙소에서 닭도리탕과 돼지두루치기로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짐을 쌌다. 다음날 새벽 3시에 택시로 성삼재까지 출발하는 일정이라 빨리 정리하고 자야했는데 누워도 잠이 오질 않는다. 이리뒤척 저리뒤척거리는데 새벽 1시가 다 되어도 아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 녀석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으니 잠이 안 오나보다. 다음날의 여정을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비몽사몽간에 알람이 울리고 예약한 택시가 왔다. 백무동에서 성삼재까지 약 40~50분까지 걸린다고 해서 나는 택시에서 눈을 좀 붙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왠걸….. SUV택시에 4명이 끼여서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은 잠은 커녕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택시 기사님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의 일정을 들으신 기사님은 넌지시 어려울 건데….. 라는 복선을 던지시며, 벽소령 대피소까지는 차가 가니까 힘들면 전화를 하라고 명함을 던져 주셨다. 혹시 몰라 등산복 바지 주머니에 고이 간직했다.
<성삼재-노고단>
도착한 성삼재는 불빛으로 환하고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이 여럿 보였다. 잠을 못자 온 몸이 노곤했지만 우리는 랜턴을 장착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출발을 했다. 공기가 맑아 별이 너무 잘 보였고,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조금 오르막을 오르자 땀이 나고 더워 입은 바람막이를 바로 벗어 배낭에 넣어야 했다. 간간히 불을 밝힌 등산객들이 지나가 심심치 않은 산행이었다. 노고단에 거의 다다랐을 때 해가 뜨기 시작했다. 노고단으로 가려면 먼저 방문 등록을 해야 했는데 그걸 몰라서 헤메다가 잠깐 딴길로 들어가는 삽질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초반에 감을 잡고 무사히 노고단 고개를 넘었다.


<노고단-삼도봉-토끼봉-연하천 대피소>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피아골 삼거리-임걸령 샘을 지나 노루목,삼도봉, 토끼봉을 거쳐 점심 식사 장소인 연하천 대피소까지 가야 한다. 꽤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할 만했다. 삼도봉에서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가장 힘들다는 토끼봉을 넘고 나니 뭔가 자신감도 생긴다. 해가 중천에 떠서 날이 더웠지만 고산지대라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물의 양과 남은 거리를 잘 계산하며, 준비해간 전해질 제품들을 중간중간에 보충하면서 무사히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계획이라면 10시에 연하천에 도착, 점심을 먹고 11시에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인원이 많고, 자주 쉬다보니 11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딜레이는 괜찮을 것 같아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물을 보충했다. 연하천이면 사실 거의 절반정도 지점이라고 판단을 해서 이때만 해도 우리는 여유가 있었다. 다만 옆에서 같이 대화를 70대 가량 되었나? 노인 등산객들이 본인들은 세석에서 잘건데 우리에게도 일정상 그게 더 낫지 않냐는 의견을 주셨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쳤던 우리는 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산행을 재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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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천 대피소-벽소령 대피소>
지도를 보면 연하천에서 벽소령 대피소가 그리 멀지가 않다. 벽소령 대피소는 들러서 지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오후 산행을 시작했는데 왠걸….. 가도가도 대피소가 나오지 않는다. 중간에 낀 형제봉을 넘어가는데 쉽지가 않다. 다들 말은 없었지만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다시 찾아보니 그 구간에는 찍은 사진도 없다) 겨우겨우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선객들이 이미 거의 다 출발을 해서 대피소에 남은 인원도 외국인 커플을 제외하고는 몇 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대피소 직원에서 자문을 구했다. ‘장터목 가시려면 세석대피소에서 5시에 출발하셔야 해요. 5시 이후에는 등산로를 닫아요. 지금 빨리 가셔야할 것 같은데요?’ 벽소령에서 세석 대피소는 거의 6km, 거기서 또 장터목은 3.4km… 6km산길을 거의 두 시간 안에 주파해야 한다. 한 낮의 고온은 최고조에 다다르고 이미 일행은 모두 지쳐버린 상태였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유혹이 자꾸 생각난다. (겸이는 대놓고 차를 부르자고 졸라대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가? 남아계신 등산객에게 여쭤보니 빨리 출발해보라고, 초반 3km 정도는 평지라 갈만하니까 지금 빨리 출발하라고, 그러면서…. 봉우리가 셋이 있는데 후반부 칠선봉과 영신봉이 좀 힘들어요.. 어우 나는 그중에서도 영신봉이 힘들더라구요.. 하는 복선을 까셨다. 정현형과 상의 끝에 일단 못먹어도 고… 출발하자…


<벽소령 대피소-세석 대피소>
불안한 마음에 첫 출발을 쉬지 않고 속도를 내었다. 조언대로 초반은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졌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으면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이었는데 마음이 그렇지 않다. 늦어도 7시까지, 4시간 안에 10km를 걸어 장터목에 가야 한다. 몸은 녹초가 되었고 마음은 급하다. 그런데 2km 못가서 벌써 오르막 산길이 시작된다. 덕평봉이다. 어떻게 어떻게 겨우겨우 넘었다. 이 경로의 절반 정도 왔는데 이미 시간은 4시를 훌쩍 넘겼다. 종주의 시종일관 같이하며 산행이 큰 도움이 되던 스마트 워치도 배터리가 다 되어 멈춰버렸다. 아무리 봐도 장터목 대피소는 무리였다. 선비샘 인근에 도달 했을 때 모두 지치고 멘탈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바위에 퍼져 앉아 패닉에 빠져 있던 와중에 장터목 대피소에서 온 문자가 생각났다. 폰을 열어보니 핸드폰 번호로 온 입실 안내 문자였다. 전화를 걸었더니 다행히 통화가 되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일하시는 직원 분이었고 우리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숙소를 세석대피소로 변경하는 것을 알아본다고 하고 통화를 끊었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에 세석 대피소 자리가 있어 그곳으로 변경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어차피 천왕봉 일출은 날아간 상황이지만 이제 살았다. 조금만 더 힘내어 3km만 더 가자… 두 봉우리만 넘으면 된다. 종주가 진행될수록 지리산의 풍경은 더욱 더 비경이 되었지만 딱 그만큼 우리는 그걸 즐길 여유가 없어졌다. 영신봉의 긴 계단을 난간을 붙잡고, 상지 근력을 동원해 겨우 올랐을 때, 그나마 구름과 함께 타고 넘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흐려져가는 정신을 가다듬게 만들어 주었다. 어떻게든 갈 수 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석양이 비추는 세석평전을 보며 겨우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만났던 노인 등산객 일원이 우리가 안와서 많이 걱정했다고, 박수를 치며 우리를 맞아 주셨다. 이 양반들은 일찌감치 이곳까지 그리들까지 들쳐매고 오셔서 소고기를 굽고 계셨다. 어른들은 빼고 아이들에게 한 점씩 나눠 주셔서 참 감사했다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
대피소 도착은 했지만 마음이 급하다. 빨리 정리하고 쉬어야 내일 일정이 이어진다. 싸들고간 버너를 셋팅하고 라면물을 받아왔다. 물받는 곳과 테이블이 약간 오르막이었는데.. 물찬 냄비를 들고 그 짧은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죽을 맛이었다.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하루종일 산행에도 불구하고 라면에 넣어 먹으려고 가져온 구운고기가 그나마 냉동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라면과 햇반, 참치캔을 후다닥 먹고 9시 정도 되었을까? 대피소의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부터 저녁 7시까지 25km 가량의 산행, 게다가 잠도 못자서 눕자마자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영 잠이 안온다. 옆자리 정현형은 코를 드렁드렁 고는데….. 온갖 생각이 든다. 집사람 생각도 나고, 내일이 두렵기도 하고….. 천왕봉 일출은 포기했지만 촛대봉 일출을 보려면 늦어도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가능할까? 천왕봉은 이제 못 갈 것 같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이 고생을 또 해야 하는건가? 또다시 비몽사몽의 시간이었다. (알고보니 코를 골던 정현형을 포함해서 모두가 잠을 잘 못잤다고 한다)

<촛대봉 일출-장터목 대피소>
어둑어둑한 새벽인데 이미 다들 침구를 정리하고 다시 산행을 하기 바쁘다. 우리는 거의 4시에 다 되어 가장 늦게 일어나 두드려맞은 듯한 몸을 가누었다. 잠들기 전에는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나 있을까? 아이들이 간다고 할까 뭐 이런 걱정이 많았는데 아침에 의외로 아이들이 잘 일어나 주어서 감사했다. 모두가 일어나서 주섬주섬 짐을 싸고 있으니 저절로 우리도 일행도 짐을 싸게 되었다. 일출이 5시 30분 가량이다. 거의 5시가 다 되어 출발을 하는데 마음이 바쁘다. 게다가 겸이가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며 잘 걷지를 못한다. 일단 겸이에게 진통제를 먹이고, 내가 겸이의 가방을 앞으로 매고, 다른 일행들은 일출을 보도록 먼저 출발을 시켰다. 어르고 다독여 촛대봉에 이르니 딱 맞춰서 해가 떠 있다. 떠오른 해를 맞으니 기분이 새롭다. 천왕봉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덩달아 겸이도 다시 힘이 나는 것 같다. 자 우리 어제 가려고 했던 장터목 대피소까지 3.4km를 가서 좀 쉬고 천왕봉까지 가자. 할 수 있다. 모두들 다시 에너지를 얻어 의기양양해졌다. 지리산 종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구간이다. 연하봉과 연하선경이 이어지는 구간… 아름다운 들꽃들이 어지러이 피어있는 꿈같은 산행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장터목 대피소, 이름처럼 사람들이 많다. 어제 이곳에서 자고 천왕봉을 다녀간 사람, 백무동, 중산리 등에서 천왕봉을 오르려고 새벽같이 올라온 사람… 사람으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핫앤쿡으로 아침을 먹고 드디어 천왕봉에 오른다.


<천왕봉>
거리는 짧지만 오르막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을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장터목 대피소에 배낭을 맡기고 몸을 가볍해서 갈 수 있어 큰 힘이 되었다. 드디어 그 끝에 오른 천왕봉…..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비석 뒷편의 비문이 모든 것을 설명하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캐나다 록키처럼 사람을 압도하듯 웅장하고, 지나치게 장엄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사방으로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와 사이사이를 오밀조밀 이어가는 골짜기는 저마다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담대하지만 억압하지 않고, 작고 흔해 보이지만 결코 그 끝이 없다. 세상 모든 이야기와 슬픔과 기쁨을 담아 낼 수 있는 어머니의 산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눈과 가슴에 품을 만한 산이다. 어젯밤 비몽사몽간에 쫒아다니던 후회의 감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자 이제 내려가자.

<천왕봉-백무동>
장터목까지 내려와 거기서 백무동까지는 6km 가량 되는 내리막이다. 정돈되지 않는 너덜바위가 이어지고 굽이굽이 내려가는데 그럭저럭 할만하다. 한참을 내려와보니 절반 정도 내려왔다. 슬슬 발이 아프고 다리가 풀리려 한다. 백무동에서 올라오는 중년의 등산객들이 짐을 내려놓고 말을 거신다. 한 시간 반동안 올라왔는데 아직 한참 가야 하나요? 그동안 내려온 길을 생각해보니 그들 앞에 놓인 고난이 눈에 훤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물어보시는 표정이 참 묘하다. 뭔가 알쏭달쏭 웃고 있다. 남은 3km을 다 내려오고 나서야 그 표정의 의미를 깨달았다. 백무동 등산로의 초입 3km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지옥의 내리막 돌계단길이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내리막을 스틱에 몸을 의지해 겨우겨우 내려갔다. 등산화 안에 발이 터질 것 같고 화끈 거렸다. 저 냥반들은 이 길을 한 시간 반만에 올라왔다고? 그분들은 대단한 분들이었다. 우리는 종주를 해서 왔지만 반대로 백무동으로 해서 천왕봉을 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예상대로라면 점심 때 숙소에 복귀에 삼겹살을 먹고, 오후에는 여유롭게 물놀이를 할 예정이었지만, 늘 그렇듯 예상과 달리 거의 늦은 오후가 다 되어서야 하산을 마칠 수 있었다. 숙소에 오자마자 짐을 팽개쳐두고 백무동 계곡으로 뛰어 들었다. 지리산의 계곡은 어디든 큼지막한 바위가 많이 쌓인 구조라 물이 깊고 계곡 풍광이 독특하다. 몸을 식히고 삼겹살과 라면으로 만찬을 즐긴 후 숙소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일상의 평온함이 생경하면서도 따뜻했다.



<에필로그>
다음날 오전, 숙소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략 이틀동안 36km 가량의 산행이었다. 첫 날은 새벽 4시부터 저녁 7시까지 23km, 다음 날은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파른 내리막을 포함한 13km 가량…. 그 고생을 했는데 종주 중에 눈에 담았던 산능선, 들꽃들이 아른 거린다. 과연 이곳에 다시 오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