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컹크 웍스

나와 형은 어릴 적에 명절에 용돈을 받으면 문방구로 달려가 프라모델 장남감을 사서 만들곤 했다. 초등하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한번은 아카데미에서 나온 록히드 마틴, 블랙버드 SR71 프라모델을 사서 조립을 했었다. D21 드론까지 포함된 제품이었는데 결국에 조립을 마무리하진 못했던 거 같다. 블랙버드는 정말이지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25km 상공을 마하 3.0을 넘나드는 속도로 날아다닌다는 경이적인 성능만이 다가 아니다. “If it looks ugly, it will fly the same.”라는 캘리 존슨의 격언처럼, 이 녀석은 정말이지 무슨 외계인의 UFO,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미적으로 생겼다.

이 경이로운 공학의 작품은 캘리 존슨이 이끈 록히드 마틴의 특수 제작팀 스컹크 웍스가 만들어내었다. 최근에 이 스컹크 웍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 ‘스컹크 웍스’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모든 것을 디지털 장비, 컴퓨터 기기에 의존하는 지금의 인류는 60년대에 어떻게 사람을 달에 보내고, 블랙버드를 만들어 하늘에 띄웠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어렴풋이 어떻게 어떻게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보다 대단한 성취에 엄청나게 많은 인력과,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단순하고 명쾌한 판단들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레고 블럭처럼 쌓이면 어느 순간 우아한 완전체가 나타나게 된다. 그 과정에 구성원의 열정과 리더쉽, 조직 운영의 노하우만 잘 작동한다면 말이다.

책장을 덮고 드는 뇌피셜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뒷배인 소위 페이팔 마피아 집단, 정부효율부(DOGE,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에게 스컹크 웍스는 분명 영감의 원천이었을 것 같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Great’는 블랙버드를 설계하고, 아폴로를 하늘로 보내던 그 시절 미국의 뜨거운 에너지를 (소련과의 대결구도, 혹은 위협에서 출발한) 한 단어로 압축한 것이다. 서류고 문서고 절차고 어쩌고 하는 비본질적인 것들에 발목 잡히지 않고 뚜렷한 목표, 천재적 직관과 극도의 효율로 불도저같이 밀어 붙이는 캘리 존슨의 신화는 이 Technocracy들에게는 구루와 같은 존재일테다.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고 잠잠해진 사이 중국이란 거인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다시 캘리 존슨을 소환하고 스컹크 웍스를 가동할 때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신났던 부분은 스컹크 웍스팀이 시험비행을 하던 토노파 (Tonopah)가 등장했을 때이다. 재작년 아이들과 미국 로드트립을 할 때 가장 인상적이던 소도시가 토노파였다. 옐로우 스톤에서 5박 캠핑을 하고 솔트레이크 시티를 거쳐 유타, 네바다를 가로질러 요새미티로 향하던 길이었다. 경로 중 우연히 들른 토노파는 삭막한 사막의 매우 작은 소도시 였지만 정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건물에는 외계인이 그려진 그래피티가 있고, 그 유명한 Area 51 근처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해질녁 사막의 석양은 끝내주게 아름다웠고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에 나오는 그 유명한 멜로디가 온 하늘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가장 기억에 남는 소도시가 토노파였다. (머문 Comfort Inn이 매우 쾌적했다.) 바로 그곳에서 F117 Night hawk를 개발했었다니…. 충분히 그럴법하다.

11월에 학회로 워싱턴 DC를 간다. 스미스소니언 우주항공박물관에 가서 꼭 SR71을 영접하고 와야겠다. 아래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문구들을 갈무리해둔다.

실제로 블랙버드를 설계한 스컹크 웍스의 설계팀은 모두 합쳐 75명에 불과했다. 이는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다. 요즘 전형적인 항공 우주 프로젝트에서는 서류를 다루는 사람만 그 2배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고속 컴퓨터가 있었다면 설계 절차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시험도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컹크 웍스는 절대로 완벽을 추구하지 않았다. 계산했던 것 보다 1파운드나 1도 정도 어긋나느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우리는 메르세데스가 표방하는 완병성보다는 대중차인 쉐보레의 기능성과 신뢰성을 달성하려 했다. 80%이상의 성과만 달성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 20%를 위해서 모자라는 자원을 투입하고, 납기를 지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잔업과 제작일정 지연으로 50%이상의 추가비용이 지출되는데, 그렇게 해 봐야 항공기 전반적인 성능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 사업에 떼를 지어 달려든 공군의 관료 조직에게도 책임이 있다. 우리가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하기 시작했을 때, 이 사업에 참여한 록히드와 공군의 인원은 합계 240명이었다. 지금 팜데일에 있는 문제의 B-2조립장에는 2000명이 넘는 공군 감사관, 엔지니어, 그리고 공식 참견꾼이 돌아 다니고 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매일 1000만 장의 서류를 작성했다. 관료 조직 속의 어느 누구도 읽을 시간이 없거나 흥미를 가지지 않는 보고서와 데이터였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상황은 감독과 관료주의가 줄기는커녕, 더 강화되는 추세다.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래리 웰치 장군은 얼마 전, 블랙버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는 공군 장성 2명, 국방부 관계자 3명, 그리고 주요 의회 관계자 4명밖에 필요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대기업의 경영진 중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신제품 개발을 명령하고, 증명되지 않은 기술에 모험적인 투자를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고경영자의 봉급이 8자리로 올라가고 사장들이 수천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스톡옵션을 받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거북이 껍질 밖으로 목을 내밀기에는 모험의 부담이 너무 큰 것이다.

고도 85000피트(25900m), 항속거리 6000마일(9600km)의 정찰기처럼 극히 어렵고 특수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험을 하고, 때로는 실패도 할 수 있는 자유가 스컹크 웍스의 핵심 요소다. 그렇게 하려면 시야가 좁은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비전통적 접근 방식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줄 아는 폭 넓은 시야의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나라의 산업 기반이 축소되고 있는 현상,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독보적인 항공 우주 산업계의 지도자로 만들어낸 고도의 숙련공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걱정하고 있다. 감원과 소모 때문에 숙련된 공구 제작자, 용접공, 기계공, 퐁동 모형 제작자, 금형 제작자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업계에 너트와 볼트를 공급하고 비행 제어 장치에서 착륙장치에 이르기까지 부품을 공급하던 가족형 2차 하청업자 역시 사라지고 있다.

왜 비행기를 모두 롤스로이스처럼 정교하고 손이 많이 가게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1970년대 초 켈리 존슨과 나는 백파이어 폭격기를 설계한 소련의 위대한 공학자 알렉산더 투폴레프와 로스엔젤레스에서 점심을 함께 먹은 일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당신들 미국인은 비행기를 롤렉스 시계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테이블에서 떨어뜨리면 멈춰 버리죠. 우리는 값싼 자명종처럼 비행기를 만듭니다. 테이블에서 떨어져도 아침에 여전히 울립니다.”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곳이 없었다.

방위 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관료적 규제, 통제, 서류 작업이 위험한 상태에 도달했으며, 그대로 내버려 두면 시스템 전반을 붕괴시킬 상황임을 알고 있다. 국방부의 한 공군 구매 담당 장성은 자기 사무실에서 한 달에 2300만 장의 서류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 100만 장이 넘는 분량이다. 많은 직원을 보유한 그의 사무실조차도 이런 엄청난 양의 서류를 정리하기는 커녕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고백했다…. 우리 스컹크 웍스에서는 그동안 아주 정말 중요한 경우에만 서류를 작성하고 나머지는 생략했다. 스컹크 웍스가 신형 항공기에 사용될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업자에게 보낸 요구서는 3페이지밖에 안된다. 그러나 록히드의 주공장이나 다른 회사에서는 같은 일을 할 때 구매 요구서가 185페이지나 되고, 업자는 1200페이지의 제안서에 이 사업에 대한 기술 데이터, 가격, 관리 등에 관한 책을 3권이나 제출해야 한다.

나는 스컹크 웍스에서 일하면서 시제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다는 그 원칙의 진정한 신봉자다. 시제기의 장점은 비용이 드는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 기체를 평가하고 용도를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군은 수십억 달러의 신형 폭격기 부대를 구입하기 전에 4~5대의 시제기로 먼저 평가를 내리고 다양한 임무에 맞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탑재한 신기술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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