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부터 준비했던 금토 연평도 농어 낚시 일정이 해무 때문에 급하게 취소되었다. 이 동네는 워낙 해무가 잦다 보니 취소가 되는 확률이 거진 반은 되는 것 같다. 하루하루 빡빡하게 일하는 직장인에게 하루의 연차를 날리는 것만치 허무한 일이 없다. 아쉬운 마음에 같이 가기로 한 일행과 금요일 점심, 동네 돼지고기 집에서 만나 물고기 이야기로 아쉬운 마음을 대신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공들여 싸둔 낚시짐이 아까워 바쁘게 섭외한 끝에 토요일 격렬비열도로 가는 영목항 루비나 1호 한 한자리를 구했다.

금요일 저녁에 일찍 태안으로 향했다. 여름 서해 밤바다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오밀조밀 들어선 방파제와 내항에는 이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어떤 이들은 불판에 삼겹살을 올리고 소주 한잔 즐기기도 하고, 원투낚시꾼들은 캐미 라이트를 켜고 여유있게 바닷바람을 쐬기도 한다. 나는 그 분위기가 그리워 일찍 나선 것이다. 아침에 배가 출항하는 곳은 영목항이지만 거긴 물살이 센 곳이라 우선 가까운 대천항으로 들어가 보았다. 보령의 대천항은 워낙 큰 항구인지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불이 훤하게 밝고 갈매기 때가 밤하늘을 가득 채운다. 큰 배들이 이 시간에도 간간히 조업을 마치고 들어오고, 위판장의 어항에는 온갖 고기들이 그득 담겨 있다. 비릿한 바다내음을 비강에 박이 넣으며 방파제 사이에 쏘가리 채비로 애럭을 노려보았는데 영 나올 것 같지가 않다. 접고 영목항으로 넘어가니 진짜 제대로 서해 여름 바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나도 선객들 틈에 캠핑의자를 깔고, 챙겨간 소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애럭 손맛을 보다 차에서 잠이 들었다.

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해가 훤하게 떴다. 얼른 짐을 챙겨 배에 올라 로드를 올리고 격렬비열도까지 먼길을 준비하게 위해 선실에 누웠다. 마침 옆 자리에 누운 조사님과 이런저런 말을 트게 되었다. 잠도 충분히 잤겠다. 첫번째 포인트인 우배도/석도 포인트에 닿을 때까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낚시를 하면 좋은 점은 이런 이벤트들이다. 매일 매일 비슷한 사람들 틈에 둘러 쌓여, 비슷한 환경, 비슷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가 보면 도대체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동 떨어지기 쉽다. 실제 세상은 훨씬 복잡하고 다채롭게 굴러가고 있음에도 그저 핸드폰으로 접속하는 세상 이야기와 뻔한 주변 자극에 길들여져서 뇌가 썩어버리는 것이다.
조사님은 경기도권에서 중소 제조업에 종사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오너는 아니고 오너 바로 밑에 임원 쯤 되시는 것 같은데 전선과 관련된 제품, 특히 건설업 쪽에서 납품하는 공장을 서너게 운영하고 계신단다. 고속도로나 국도를 타고 다니다보면 수도권, 좀 멀리는 충북권 정도만 가도 저런 중소공장이 정말 많이 보인다. 누가 운영하고, 뭘 만드는지 모르는 수 많은 업체들…… 세상이란 곳이 조금의 이윤이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낙차 혹은 기회만 있어도 누군가는 그것을 포착하고 달라붙게 된다. 한비자의 설림편에 “어부는 태연하게 장어를 잡고, 여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누에를 만진다. 용기는 이익에서 나온다.” 는 말이 세상 밑에 흐르는 근본 이치이다. 저 공장들이야 말로 진짜 real world, 실전일텐데 나는 어쩌면 보호막에 쌓여서 눈과 귀를 닫고 사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확하게는 나는 기자처럼 주로 질문을 하고 조사님이 대답을 하는 형국이었다. 기억나는 몇 가지들만 대화체로 구성해보자. 아래 내용은 내 생각은 아니고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있을 수 있다….
“어우 중국에 납품을 맡기면 이 놈들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얘네가 못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기술은 가지고 있어. 근데 첨에는 스펙에 맞춰서 납품을 하다가 어느 정도 괜찮다 싶으면 몰래몰래 하자를 만들어요. 딱 도금부위 검사하는 곳만 기가 막히게 도금하고 나머지는 안 해버리고… 적발해서 클레임을 하면 원가가 올라서 그렇다고 돈 더달라고 하고… 정말 일하기 힘든 사람들 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업체 아직 중국보단 쪼금 더 기술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걔네가 못만드는 것들이 있기는 한데 거의 따라잡혔다고 봐야죠. 일본, 독일은 아직 저 멀리 있고…. 일본은 정말 여전히 소부장 쪽은 최고입니다. 독일도 좋은데 얘네는 너무 까다로워요. 장비하나 고장나면 뜯어보지도 못하게 하고 AS는 비싸고.. 반면에 일본은 와서 AS도 잘해지고 품질도 정말 좋아요. 근데 얘네는 우리처럼 공격적으로 사업을 하진 않아요. 우리나라는 딱 일본 중국 중간 정도 포지션에서 먹고 사는 거죠.”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는 수도권에서도 제조업 못하죠. 중국이나 베트남 쪽 공산당 애들은 일하다가 보면 지들끼리 패거리를 만드는 문화가 있어서 골치 아파서 잘 안쓰려고 합니다. 태국애들은 성윤리가 너무 엉망이라서 엉뚱한 문제가 생겨요. 의외로 인도네시아 친구들, 네팔 이런 친구들이 잘하죠. 근데 얘네들한테 핵심공정을 맡길 수는 없어서 그게 진짜 문제에요.”
“한국 젊은 얘들은 좀만 일하다가 다 나가고 그래요. 월급 많이 줘도 그래요. 솔직히 제조업이라는 게 처음에 좀 배워서 잘 돌아가도록 관리를 하는게 중심인데 엄청 심심하거든요. 지역에 내려와서 있으면 젊은 친구들이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다 서울로 가고 싶어하니까 어쩔 수가 없어요. 심지어 중소제조업 사장들도 2세들이 사업 안 물려받고 그냥 카페하고 자영업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독점 기술을 가진 진짜 알짜배기 공장들이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서 막 문닫고 그런다니까요. 2세들이 멍청한 것도 아니에요. 다 서울대 SKY 나온 친구들이 공장 운영은 싫어서 그냥 자영업하다가 말아먹고 그럽니다. 큰 일이에요. 우리나라 제조업도 바닥부터 다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경기가 너무 안 좋아요. 건설업이 다 죽어 버려서 체감 경기가 엉망입니다. 우리도 얼마전에 공장 하나는 닫아서 3개만 돌리고 있습니다. 자동차 자동차 하는데 자동차 해봐야 부품 2~3만개니까 최소 10만 단위가 넘어가는 건설업에 비하면 하청업체 규모가 차이가 크죠. 당장은 괜찮은 것 같아보여도 앞으로 큰 일입니다.”
“저는 영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정말 우리나라 전국에 공장, 중국, 베트남 등등 안 가본데가 없습니다. 본래 그렇게 다니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 좋은 기술 가지고 있는 중소업체가 구석구석에 정말 많습니다. 저는 딱 회사 로비에 들어가보면 알아요. 이 회사는 잘 돌아가는 회사다 망할 회사다… 로비가 깔끔하게 정돈되고 특허증이나 제품 전시가 제대로 된 곳이면 보통 잘될 회사입니다. 상장회사면 주가 1000~2000원 정도 밖에 안하는데 그런거 사두면 백퍼 오릅니다. 한참 재미 많이 봤어요. 망하는 회사는 오너가 허세가 들어서 자꾸 이 사업, 저 사업 벌리고 하는 회사는 무조건 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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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님 이야기를 듣다보니 포인트까지 가는 한 시간에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 날 조과는 지금까지 서해 농어 루어를 다녀본 중에 최고였다. 꽤 오래 농어 캐스팅을 즐기셧다는 조사님 (아마도 50대 후반?)도 낚시 실력도 아주 베테랑이셨다. 배에 타신 조사님들이 대부분 실력과 매너가 좋아 아주 즐거운 낚시였다. 풍성한 조과 덕택에 주말 지나 두 번이나 농어로 큰 회식을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