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이야기 #6> 정현이형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기간이 의대동기인 정현이형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하는 큰 아들, 은규를 데리고 캘거리에 다녀갔다. 시국이 하도 어수선하여 여정이 성사될지 어쩔지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오시게 되어 우리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며칠 전 한국으로 들어가셨다. 마침 계시던 기간에는 이곳 날씨가 따뜻했는데 가시자마자 눈과 함께 추위가 또 찾아왔다. 바깥은 온통 흰서리가 잔뜩 끼어 있고, 나는 벽난로 옆에 앉아 은근한 불기운을 느끼며 그와의 추억을 생각한다.

형을 처음 만나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본과 1학년 초반, 축구부 정규 연습을 하던 어느 목요일 오후로 기억한다. 축구부 연습은 방통대 옆에 있는 사대부속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했었는데 연건캠퍼스에서 그쪽으로 넘어가는 횡단보도에서 인사를 나눴던 장면이 떠오른다. 긴장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함께 공부하는, 솔직히 말하자면 경쟁해야 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내세울 것이라고는 몇 살 나이를 더 먹어 세상 경험 조금 더 있는 것 밖에 없는 처지라 그냥 살아만 남자….하고 생각했었다. 잠깐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운동장의 공기는 그 긴장감을 완화시켜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쉽지만 나의 신체능력은 축구 열정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연습때나 잠깐 자리를 채우는 얼치기 회원이었다. 그에 비해 정현형은 겉보기와 다르게(?) 놀라운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어서 축구부의 주전 골키퍼를 도맡으셨다. 여하튼 그는 편입한 나와 달리 뒤늦게 수능을 봐서 입학하였고, 예과 후 병역을 마치고 본과를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본과4학년 선배가 예과 동기인 셈이라 축구부 선배들도 두루두루 알고 계셨고, 특유의 친화력과 푸근함 때문에 축구부에서는 나는 그의 옆에만 붙어 있어도 뭔가 묻어가는 느낌이 있었다.

축구부 외적으로도, 그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현역 동기들과의 나이 차이만큼, 나와 그와의 나이 차이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긴장한 것 이상으로 그의 본과 시작도 무척이나 긴장된 일 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이를 더 먹으니 그 깟 몇 년에 대수롭지도 않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그 이질감이 꽤 컸다. 위축되었고, 뭔가 조금씩 겉도는 것 같았고, 자의식은 늘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나의 친형은 뒤늦게 수능을 보고 의대에 들어가서 의무병을 하던 무렵이었다. 대략 형이 정현이형과 거의 비슷한 나이대에서 본과공부를 할 시작할 참이었으니 정현이형을 보고 형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복잡하다만 쉽게 이야기해서 ‘복학생 연대’ 비스무리한 것이 생긴 것이다. (비슷한 처지의 승현이형, 영윤이형, 희동이형, 이수민 등 노친네들끼리 자주 어울렸다.) 둘 다 지방 출신이라 4년 내내 연건기숙사에서 붙어 생활을 하며 수업듣고, 공부하고, 시험쳤고, 셤친 날이면 홀가분한 마음에 고기를 먹고 술을 마셨다. 마침 두 사람 다 여자친구가 있던 상황이라 관련된 고민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정현이형이 없었으면 그 시간이 참 외로웠을 것 같다. 내가 그럴까봐 누가 보내주기시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감사하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만큼 에피소드는 셀 수 없이 많지만 하나만 풀어보자. 정현이형은 의대에 들어오기 전에 한양대에서 풍물패를 했었다. 놀라운 반사신경만큼 그는 꽹과리와 장구도 끼깔나게 잘 쳤다. 의대에는 ‘연풍’이라는 풍물패가 있었는데 그 즈음에 이미 풍물 동아리의 인기는 사그러들고 있었다. 그래서 회원수도 얼마 되지 않은 연풍에 실질적 리더는 정현이형이었다. 본과 수업을 듣던 강의실 아래 계단 밑, 외곽으로 뚫린 공간이 연풍의 동아리 방이었고, 습기차고 곰팡이 슬던 그 ‘연풍방’은 때때로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공부할 곳이 없으면 그곳에 불을 켜고 밤을 지새웠고, 궁핍한 관계로 고깃집에서 고기를 원없이 못 먹을 때는 연풍방에서 마트에서 산 삼겹살을 부르스타에 궈 먹기도 했다. 여하튼 나는 풍물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지만 정현이형의 꼬득임, 그리고 명목상 연풍회원이기도 해서 동아리방에 있는 사물놀이 악기를 가지고 쉬운 사물놀이를 연습해서 축제에 공연도 하고 그랬다. 그러던 어느날, 정현형이 공연섭외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무슨 서울시의사회 신년회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여튼 풍물 공연을 해달란다. 마침 축제 때문에 연습을 한터라 따로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내키지 않지만 하기로 했다. 멤버는 장구에 정현이형, 자연대 풍물패 에이스였다던 수민이가 꽹과리, 나와 승현이형이 북, 징은 일본 교표인 준우 였나 영윤이형이었나.. 앰베세더 호텔 이었던 것 같은데 럭셔리한 행사장소에 도달했을 때 이미 나는 기가 죽어 있었다. 우아한 선배 의사 선생님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스테끼를 썰고 있었고, 우리 보다 앞서 다른 팀이 먼저 소개되었다. 세브란스 의과대학 음악반 오케스트라팀이었는데 모두들 젊고 귀티나는 외모에 검은 정장을 쫙 빼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모짜르튼지 베토벤인지 뭔지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클래식을 연주하는데 귀빈들이나 연주자나 모두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세브란스 팀이 연주를 마치고 사회자가 우리를 소개했다. 서울의대 풍물패 연풍…….. 제대로 빨지도 않은 꼬질꼬질한 풍물복을 입은 우리가 무대에 등장하자 사람들이 수근수근대는 것만 같았다. 오케스트라에 비해 몇 명 되지도 않은 인원, 게다가 하나 같이 늙수구레한데다가 몽타주도 복장만큼이나 우울하다. 하지만 조용하게 시작된 풍물 리듬은 리더인 정현이형과 꽹과리 마스터인 수민이의 하모니에 맞추어 점점 더 고조되기 시작했다. 덩달아 초짜들인 나머지들도 무대를 휘감는 에너지에 동조되어 평소 연습 때와는 생판 다른, 폭발적인 소리를 그 공간에 뿌리고 있었다. 풍물이 주는 엄청난 에너지에 원탁에 앉아 우아하게 스테끼를 썰던 할버지, 할머니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의구심으로 우리를 소개했던 사회자들도 턱이 벌어져 바닥에 닿을 지경이었다. 모든 리듬이 끝나는 절정의 순간, 수민이는 꽹과리를 하늘 높이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날, 그 무대는 우리가 평정하였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왔고, 내 평생 처음 무대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본과 생활은 학기 중과 방학 기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부침의 연속이었다. 고통스러운 학기가 끝나면 홀가분하게 방학을 즐기는 친구들과 달리 오히려 나는 방학이 되면 학업보다 어려운 인생사업 때문에 더욱 고달팠다. 차라리 학기중에는 ‘공부’라는 명분으로 모든 것의 우선 순위를 조정할 수 있어서 쉬웠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그 명분이 사라졌고 나는 진도를 나가야했지만 하나도 되는 일이 없었다. 학기 중에 붙어다니던 정현이형도 방학 기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고,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잠수를 타는 것 뿐이었다. 심지어 정현이 결혼하신 본과 2학년 겨울 방학 때, 내 상황이 도저히 실타래가 풀리지 않아 그의 결혼식조차도 참석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이제 그만 포기해야할 것 같다는 메일을 쓰기도 했다. 긴 시간이 지나 후에 그에게 듣기를 내 메일을 받고 고심끝에 장문의 답장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메일을 보낼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접었단다. 본인이 생각해봐도 그 답장은 정말 잘 쓴 글이라는데 아쉽게도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단다.-_-;;; 그저 ‘힘내라’, ‘잘 될거야’가 아닌, 나의 나약함을 준엄하게 꾸짖는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비록 내가 그 메일을 받아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내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까? 이후에 무사히 내 인생사업도 잘 마무리가 되어 이제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정현이형이 정형외과의사를 하고 계시는 모습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함께 시간을 보내시면서 지켜본 그는 나와 달리 손이 참 야물딱진 사람이었다. 공부한 종이들을 꿰어 노트를 만들거나, 고장나거나 부서진 집기들을 요리조리 만져서 쓸만하게 만들어 놓는 재주를 보면서 나는 늘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수술을 한다면 내 몸을 맡기는 것이 하나도 불안하지 않겠다고…. 형이 무사히 원하시는 과에 들어가고, 힘든 수련과정을 마치시고, 또 재밌게 일 하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쁘다. 비록 멀리 포항에 계셔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주셔서 더 감사하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 곧 이 친구들의 시대가 올 것이고 우리는 슬슬 사라져갈 준비를 해야할테지… 사라질 때 사라지더라도 사람과 이야기가 함께 있으면 외롭거나 슬프진 않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