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2>

<사람이야기 #2>

심대건씨….

나의 휴대폰에 그의 전화번호는 심대건씨로 저장되어 있다. 사실 그는 나의 아내와 같은 파평 윤씨 (심지어 생일도 아내와 같다), 윤대건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심대건이 자연스러워졌다. 심대건의 유래를 추정해본다면 ….. 예전에 카이스트에서는 bbs라는 형태의 게시판이 (지금의 SNS와 유사) 아주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simple이라는 아이디를 심대건씨가 사용했었다. 아마도 그가 즐겨피던 KT&G의 담배 상품명에서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와 동기이자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인 윤일환 (일명 펭귄) 형이 심대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 상대방을 높이는 듯 하지만 묘하게 깎아 내리는 ~씨를 윤일환 형이 사용하면서 ‘윤대건 선배’는 드디어 ‘심대건씨’가 되었다. 그를 칭하는 조금 더 대중적인 명칭은 ‘대거이 형’이라고 생각된다. 뭔가 이름 자체가 ~형이라고 붙이기에 입에 짝짝 맞는 느낌이 있기도 하고, 후술할 그의 캐릭터 또한 무슨무슨 형이 참 잘 맞았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심대건씨로 그를 각인시키고 있다.

심대건씨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토바이 이야기이다. 대학에 들어간 20대 초반,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오토바이 열병에 빠져 있었다.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앓고 지나가는 젊음의 열병이니 지나치게 설명가능하다고 해야 하나? 돌이켜보면 오토바이 자체라기 보다 이탈리아 바이크 메이커인 aprillia의 RS (Racing Spirit) 시리즈에 푹 빠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틈만나면 인터넷으로 RS 바이크 사진을 찾아보며 일종의 욕정을 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봐도 97~98 년식 aprillia RS 50, 125, 250의 디자인은 세대를 뛰어 넘는 클라스를 가지고 있다. 절묘한 색의 배합과 유려한 알루미늄 프레임의 곡선, 치켜든 텐덤 좌석 꽁무니의 각도는 묘한 관능미를 뿜어낸다. RS 시리즈는 크게 3가지 컬러를 가지고 있는데 전체를 은색으로 도색한 카울 (유승준의 나나나 뮤비에 나와서 유명해짐), 검정색 바탕의 하라다 컬러, 그리고 실버/레드/블루를 절묘하게 섞은 롯시 컬러가 그것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롯시 컬러를 가장 좋아했다. 여기서 롯시는 MotoGP의 황태자인 발렌티노 롯시 (하물며 이름이 발렌티노 롯시이다) 가 aprillia 소속일 때 그를 기념하여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각설하고, 오토바이라는 로망에 사로잡힌 나에게 이미 바이크 생활을 시작하고 있던 고등학교 1년 선배 심대건씨는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였다. 노랗게 염색한 긴 머리에, 화이바 따위는 거추장스럽다는 듯 벗어 제끼고 담배를 꼬나물고 달리는 그의 모습을 멀리서 볼 때마다 나는 BTS를 목격한 소녀처럼 흠모의 감정을 가졌었다. 겉보기와 달리 나는 부끄럼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여러 동문 행사에서도 쉽사리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렵게 어렵게 그와 말을 트고, 오토바이 이야기를 하고, 또 오토바이 타는 법을 그로부터 배웠다. 그가 당시에 타고 있던 오토바이는 Lucky Strike (담배 상표) 도색을 한 엑시브(Exiv) 125였다.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던 바이크 중에는 대림 VF 125, 와 효성 Exiv 125가 대표적이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찐개찐이지만 VF는 왠지 천박해 보였고 Exiv를 타야 제대로 오토바이 탄다는 인식이 있었다. 심대건씨의 도색한 엑시브는 나름 괜찮게 나와서 (물론 aprillia 만큼은 아니지만) 그놈을 타고 캠퍼스를 달리면 제법 기분이 났었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심대건씨의 엑시브로 바이크에 입문했던 걸로 기억난다.

바이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심대건씨의 인간적 매력은 어쩌면 그의 바이크보다 더 큰 것이었다. 그는 외양에서 풍기는 날카로움과 달리 대인배의 풍모를 유감없이 시전하면서 나같은 쫌생이들을 감화시켰다. 출석이나 학점 따위는 ‘아~~씨0…. 0 됐네..’ 한 마디로 모두 해결 가능한 문제였고, 고깃집에서 고기가 굽히기도 전에 이미 공기밥 한 두 그릇에 소주 각 일병이 기본이었다. 오도바이를 타고 그와 함께 계룡산, 장태산, 대천해수욕장을 누비며 봄과 가을을 만끽했고, CC동산의 구석진 곳에서 태연하게 삼겹살을 구웠다. 뭐 캠퍼스 폴리스의 테클이 들어와도 우리는 ‘아~ 쫌만 묵고 가께요.’ 모든 일이 그렇게 ‘사바사바’ 흘러가던 시절이었다. 그는 상남2인조의 마사키 선배였으며, 그의 바이크는 홍련의 ZII였고, 반항하지마 영길의 현신(現身)과도 같았다.

최근에 낚시를 시작했다고 어느날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그와 바닷바람을 같이 맞았다. 조과는 꽝이었지만 그와 짧게나마 함께 하는 것이 정말 기뻤다. 이미 우리는 늙어 버렸고, 발렌티노 롯시도 작년에 MotoGP를 떠났고, 바이크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런 그가 지금 삼성에서 박사 연구원으로 근무한다는 것도 무척 비현실적이다. (사실 지금 내 모습도 비현실적이다. 나도 알고 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고, 어찌할 방법도 없지만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 덕에 삶이 풍성해지고 이야깃꺼리 생겨나서 참 감사하다. 사고없이 사지 멀쩡하게 졸업했음도 물론 다행이다.

한 가지 심대건씨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은 것은 그가 힘들 때 잠깐이라도 그의 곁에 함께 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의 부모님 부고가 차례로 왔을 때…. 아마 한번은 스리랑카에 있었던 것 같고…. 한 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하튼 제대로 챙기질 못해서 그를 생각할 때마다 부채감이 든다.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부채감을 해결하는데 써볼 예정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냥 종종 봅시다……

그와 낚시터에서 찍은 사진으로 두번째 사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건강하십쇼 대거이 행님~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