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이야기 #17> 캘거리에서 활어회 먹기
아마도 북미 어디든 비슷할 것 같은데 워낙에 물류가 좋아지고 K-문화가 퍼지면서 캘거리에서도 왠만한 한국 음식들은 다 먹을 수 있다. 잘 가진 않지만 한국식당도 많고, 한국음식 식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유독 아쉬운 것이 있다면 수산물, 그중에서도 특히 활어회가 되겠다.

여기서 생선회를 완전히 못 먹는 것은 아니다. 스시집도 많고 사시미 그레이드의 연어 (주로 양식 대서양 연어)라든가 냉동 참치 블럭 같은 것들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한국 마트에 가면 방어 (일어로 하마치) 횟감 블럭 같은 것도 있어서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생선회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에게 익숙한 흰살 생선회, 특히 살아있는 상태로 즉살하여 쫄깃한 식감을 간직한 활어회는 쉽지가 않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활어회를 먹으려면 조업단계부터 유통까지 chain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야 어디서든 바닷물을 담고 돌아다니는 수조차가 있고, 노량진 수산 시장처럼 온갖 바다생선이 수족관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광경을 보는게 익숙하지만… 사실 이런 우리나라의 모습은 상당히 유니크한 측면이 있다. 나는 외국손님을 모셔야 하는 상황에서 노량진에 데리고 간 적이 여럿 있었고 모두 대성공이었다. 생경한 풍경과 분위기, 한국식 활어회의 독특함에 손님들이 상당히 재미있어 했다.

사실 북미에서도 H-마트에 한국산 양식 활광어가 들어온다. -_-;; 특수한 처리를 해서 광어를 거의 가사(假死) 상태로 바닷물의 무게를 줄이고 비행기로 광어를 유통하는 과정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여튼 비행기까지 타고 온 귀한 광어는 2kg~2.5kg 가량 무게(3~4인분)에 손질비 포함해서 한국돈으로 15만원 가량 정도니까 맘 먹고 먹자면 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나는 작년 가을 토론토에 갔을 때 외사촌이 사줘서 한 번 맛볼 기회가 있었다. 간만에 먹는 광어회라 감격적이었으나 아무래도 한국에서 먹는 대광어 (3kg 이상) 보다는 사이즈 면에서도 좀 아쉽고, 장거리 비행을 하고 와서인지 약간 푸석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광어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엔가와(지느러미 살)가 조금 쭈그러들고, 씹었을 때 터져야 하는 고소함과 기름맛이 덜했다. 그래도 먼 타지에서 한국산 광어회를 맛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끼고 있는 북미라고 해서 왜 좋은 횟감이 없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식문화와 유통구조의 차이 때문에 구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여러 군데 통로를 통해서 수소문을 해보니 중국계 식료품 마트에서 북미 서부, 즉 태평양에서 나는 lingcod를 활어 상태로 유통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밴쿠버에 사시는 교민 유튜버가 lingcod를 사서 실제로 회를 뜨고, 먹어본 영상을 올린 것도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학회로 밴쿠버에 갔을 때, 중국 마트에서 lingcod를 수족관에 두고 파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즉, 현지 바다생선을 활어회로 먹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만 밴쿠버는 바닷가 도시니까 이런 유통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용이하겠으나 캘거리와 같은 내륙지역까지 살아있는 바다 생선을 유통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여기는 밴쿠버에서 차로만 10시간이 넘는 곳이다. 수요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캘거리로 돌아오기 전 한 마리 사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올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비행기에 어떻게 실어 올지, 아내의 잔소리를 어떻게 감당할지 답이 나오지 않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었다.

얼마 전, 캘거리 공항 근처에 갈 일이 있어 인근의 중국마트를 가봤다. 밴쿠버의 중국마트와 같은 체인이고, 규모가 큰 마트라서 혹시 lingcod를 활어로 유통하고 있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lingcod들이 수족관을 채우고 있었다!!! 캘거리에서도 신선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이 후 몇 달을 벼르다가 생일을 맞아서 아내의 윤허를 받았다. 매년 늦가을 생일 무렵이면 나는 아무 선물도 필요 없으니 그저 바다나 함 나가게 해주소….. 하고 낚시를 가서 농어를 만나고 왔었다. 올해는 바다낚시고 농어고 모두 어려우니 그저 lingcod 한 마리 업어 오겠다는 나의 선언은 명분과 실리 측면에서 거부하기 힘든 딜이었다.

lingcod라는 물고기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보자. 한국 명칭은 ‘범노래미’라고 불리는데 사실 이게 의미가 없는 것이 한국 인근 바다, 서부 태평양에는 살지 않는 물고기이다. 생김새는 길쭉한 것이 노래미와 유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훨씬 대형종으로 크게는 1.5m까지 자라는 육식어종이다. 그리고 대가리의 생김새는 노래미 보다는 자바리(제주도명 다금바리), 붉바리 같은 바리과 생선 (영어로는 grouper) 에 조금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고급어종의 냄새가 물씬 난다는 뜻이다. 나의 뇌피셜이긴 한데 영어권에서는 살이 좋은 흰살생선은 그냥 무턱대고 cod(대구)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 같다. 워낙 서구 수산문화에서 대구라는 생선이 끼쳐온 영향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lingcod는 분류학상으로 대구와 별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선에도 ‘cod’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식용어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lingcod는 북미에서 아주 사랑받는 수산물이라고 한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캘리포니아서 lingcod를 낚은 적이 있다. 그리고 지난 미국로드트립 중 몬터래이에서 킵 사이즈 링코드를 낚아 회맛을 본 적이 있다. 비린내가 거의 없고, 살이 쫀득하지만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고 깔끔한 흰살생선임을 그때 이미 확인하였다.

Lingcod는 10~11월 경에 연안으로 올라와서 12월에서 3월 사이에 산란이 이루어진다. 즉, 지금 시기가 산란 직전 가장 살밥이 좋은 제철인 셈이다. 생선은 산란 직후에는 영양분을 잃어 식용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여하튼 딱 좋은 타이밍에 중국마트로 가서 lingcod 한 마리를 골랐다. 대략 11파운드, 약 5kg, 80cm 가량 되는 놈 (수족관에 있는 고기 중에서는 비교적 작은 녀석)을 골라 직원 분에게 피와 내장만 빼고 그대로 달라고 주문했다. 가격은 한국돈으로 10만원 가량, kg당으로 환산하면 2.5만원이니까 한국 기준으로도 상당히 좋은 가격이다. 큰 물고기를 얼음을 담은 아이스박스에 담으니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너 이거로 뭐할꺼냐?”… 내가 사시미를 뜰 거라고 하니 …. “대가리는 어쩔거냐”고 또 물어본다. 삶아서 soup을 끓일 거라고 하니 … “엄지척!.. 내 생각도 바로 그거다. 그렇게 먹는게 젤 좋을 것 같다”…. 손질해주시는 직원분이 센스있게 먹을 수 있는 내장 (위)도 챙겨주었다.

집으로 생선을 가져와 백야드에서 비늘을 치고 지느러미를 모두 가위로 잘라 제거했다. 나도 이렇게 큰 생선을 직접 손질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지난 몬터래이에서 한꺼번에 여러 마리의 생선을 손질하면서 하드 트레이닝을 하고 온터라 약간 솜씨가 늘은 것 같다. 오로시 (포 뜨기)해서 껍질을 탈피하고, 적당한 크기로 큼직하게 썰어 해동지로 꼼꼼하게 싸매었다. 대가리와 아가미 아래의 가마살은 구이용으로 깨끗이 씻어 굵은 소금을 쳐서 건조망에 넣어 꾸덕하게 말렸다. 서더리용 뼈도 잘라서 탕거리로 정리하고 내장과 껍질도 숙회용으로 분리해두었다. 다음날 처형네 식구를 우리집으로 모셔서 즐거운 활어회 파티를 했다. 하루 숙성된 회는 쫄깃함은 조금 죽었지만 감칠맛이 적당히 올라와서 젓가락이 멈출 줄 몰랐고, 소금이랑 마늘만 넣고 맑게 끓인 지리는 곰국처럼 뽀얗게 노란 생선기름이 둥둥 뜨는, 제대로 된 지리탕이 되었다. 끓는 물에 데치고 얼음물에 담궈 쫀득한 껍질과 썰어낸 내장숙회는 기름장과 환상의 조합이었고, 후라이판에 제대로 구워낸 대가리의 뽈살과 가마살의 쫀득한 식감은 가히 화룡점정이었다고 할까….

솔직히 한국에서 어디 동네횟집만 가도 이렇게 먹을 수 있겠지만 이 먼곳에서 어렵게 어렵게 흉내를 내다보니 더 감흥이 커지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태평양의 제철 lingcod는 상당히 매력적인 수산물인 것도 틀림없다. 시즌이 가기 전에 한번 정도 더 기회를 마련해봐야겠다.

여담) 일본식 용어를 쓰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데 이상하게 이쪽 용어는 일어가 찰싹찰싹 입에 붙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