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르뽀)

운수 좋은 날 (르뽀)

지난 주 금요일 모임이 있어 저녁식사를 하고 대리운전을 불렀다. 과음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럴 땐 택시비 내는 셈치고 대리운전을 부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해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평소에 대리운전 부를 일이 거의 없었지만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이 지금은 물의를 일으켜 방송에 나오지 않는 모 연예인의 “이ㅇㅇ의 대리운전 15XX ~~ 언제나 똑같은 번호… ” (광고의 효과는 참으로 지대하다.) ……

결국 그곳에 신청하였다. 출발지와 도착지를 설명하고 가격을 안내받고 기다리길 십여분, 온다던 대리기사로부터의 연락은 도무지 오질 않았다. 아이들과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조바심에 스마트폰으로 인근 대리운전 센터를 검색해서 다시 전화를 해보니… 전화받는 첫 마디에 ..”연건동에서 낙성대 가시죠?” .. 어라? 대리운전 회사마다 따로 네트웍을 가지고 있진 않나보네.. 도대체 수익 배분을 어떻게 하는 구조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결국 30여분에 걸려서야 주차장으로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날리며 노곤한 차림의 대리기사님이 잰걸음으로 뛰어 오셨다. 키를 맡기고 시동을 걸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말을 열었다. 기사님은 내가 늦으신 것을 탓할까봐 다소 방어적인 태도였다. 난 거듭 내가 화난 것은 아니며.. 다만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그렇다는 것을 설명해야만 했다.

“이게요.. 사장님이 전화하시면 스마트폰 프로그램에 다 떠요.. 다떠.. 지금 보시면 서울 시내에 1500개 콜이 떠 있어요. 그걸 각 지역에 있는 기사가 자기가 가까이 있는 것을 잡는 겁니다.”

사장님이란 호칭이 귀에 거슬렸지만 굳이 그걸 교정하기 위한 노력도 서로 피곤한 것이다. 일단 스킵,,

“그러면 기사님.. 제가 전화한 회사에 상관 없이 그 앱에 다 뜨는 건가요?”

“아 물론이죠… 회사는 어디에 있든 상관 없이 자기네들이 띄운 콜을 기사가 잡으면 기사한테서 20% 떼갑니다. 사장님 첫번째 회사에선 만오천원 불렀고 두번째 회사에선 만칠천원 불렀죠? 벌써 제 통장에서 삼천 사백원 빠져나가요…. 제가 나중에 사장님께 얼마를 받든 거기는 상관이 없어요..”

그는 내가 혹시나 첫번째 제시 받은 가격인 만오천으로 우길까봐 벌써 경계하는 태세였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손님들이 그렇게 우기지 않을까….. 사람 상대하는 일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난 그런 것은 내색하지 않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 콜이 뜨는 앱을 만든 회사는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버는 거죠? 회사랑도 따로 돌아가는 거 같은데…”

“거긴 우리가 다 따로 돈을 내잖아요.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달달이 사용료를 다 내요. 즉 대리운전 회사는 기사한테 수수료만 받고, 프로그램 만든 회사는 대리기사들한테 프로그램 사용료를 받아가요. 아주 칼 같이 가져 갑니다. 사장님 한참 기다리셨죠? 지금이 피크타임이에요. 이 때 기사들은 시간이 돈이에요. 여기서 낙성대 가는 거랑 저기 경기도 수원이나 안산 가는 거랑 솔직히 차 안 막혀서 시간은 똑같은데 그쪽은 삼사만원 받아요. 누가 낙성대 갈라고 하겠어요….”

“그러면 기사님이 또 서울까지 오셔야 되잖아요?”

“에이…. 이시간에는 왠만하면 다 타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경기도 권에서 서울 들어오는 차도 많아요..”

이쯤에서 밤을 쏘아 다니는 이들이 도대체 하루에 어느정도 벌이가 될지 궁금해졌다.

“기사님 이렇게 밤에 다니시면 어느정도 까지 버실 수 있어요?”

“아~~ 요새 참 어렵습니다. 사장님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루에 진짜 많이 타면 10번 타요. 서울 시내로 생각하면 한번에 만오천원이니까 10번하면 십오만원이죠? 회사에서 삼만원 떼가고, 장소 옮기는데 대중교통타고 하면 이삼만원 훌쩍이에요. 그것도 운수 좋은 날에나 그렇죠… 하루에 10번 타는 날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에요. 요새 같으면 평균 잡아도 하루에 7~8만원 들어오면 다행이죠”

하루에 7~8만원이면 한달을 쉬지 않고 꼬박 일해도 200만원 초반…. 고물가의 서울 바닥에서 살아가기 결코 녹록치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각박한 상황이라도…. 누군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무언가 특별한 노력으로 뛰어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 경쟁의 선순환 구조가 있다면 이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있지 않을까? 그러한 측면에서 질문을 던져 보았다.

“기사님… 혹시 어떤 기사님이 특출한 서비스 정신으로 손님들을 잘 모신다면 다른 기사님들과 비교해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에이.. 사장님.. 모르시는 소리 하시네… 대리기사 초반에야 그랬을 수 있겠죠.. 지금 보세요. 회사에서 관리 다하면서 수수료 떼먹죠… 스마트폰 프로그램에서 알아서 기사배치되죠… 단골손님이란게 있을 수도 없어요… 오직 시간이 돈입니다. 대리기사들이 과속을 많이 해요. 시간이 돈이라서 그래요. 단속걸리면 알짤 없습니다. 바로 통장에서 나갑니다. 연체되면 그냥 블랙리스트 뜹니다. 그 회사 뿐만 아니라 전체 대리기사 콜을 못잡습니다… 여기 무서운 세상이에요. 대리기사.. 이거 운전면허 있으면 누구나 하잖아요… 경쟁이 엄청납니다..”

다시한번 스마트폰을 위시한, 점점 더 스마트해져 버린 새로운 생태계가 깨알같이 인간의 인간다움을 제단하는 현장을 느낄 수 있었다. 메르스를 대하는 정부의 시스테마틱하지 않은 모습은 인간성에 대한 최후의 보루였던 것인가…..-_-;;;

이제 관심을 돌려 이 기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해 보았다.

“기사님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대리기사치고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 소화기 만드는 작은 회사를 했었죠.. 꽤 잘나갔어요. 아들 뉴질랜드에 유학보내서.. 마누라랑 같이 .. 물론 기러기 아빠긴 했지만…. IMF는 어떻게든 잘 버텼는데 2003년도에 부도 맞고 뉴질랜드 갔다가… 맨날 싸우고.. 미국 갔다가, 일본 갔다가, 태국 갔다가.. 결국 다시 돌아와서 여기서 이러고 삽니다…”

“가족이랑 떨어져서 외롭지 않으신가요?”

“마누라야 머…. 남이나 다름 없고… 아들? 아들은 소용 없어요… 딸은 달라요.. 딸은 주위에 보면 아빠 늙어서 돈없고 힘 없어도 연락도 온다든데… 저는 아들 하나 밖에 없습니다. 작년에 제대도 했는데…. 연락도 없어요… 뉴질랜드에 다시 가서 뭐 공부한다는데… 80 넘으신 노모랑 둘이 같이 겨우겨우 먹고 삽니다..”

아~ 역시 아들은… 딸이 필요한 것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나…

“지금 일하셔서 뉴질랜드에 조금이라도 보내주실 수 있나요?”

“에고 무슨 소리 하세요… 노모랑 둘이 먹고 살기도 빠듯하지요.. 아들놈이야 자기 인생 알아서 살아가야지요”

어느듯 차는 낙성대에 다다랐다. 나 역시 한낱 소시민이요. 애꿋은 동정 또한 사치리라. 이들에겐 시간이 돈이라니… 낙성대 깊숙히 들어갔다간 기사님은 또다시 걸어서 혹은 뛰어서 낙성대로 나와야 하기에… 학교로 들어가는 길목, 번화가 가까이에서 기사님을 내려다 드리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부디 건강하시라는 인사와 함께 작별을 고했다.

관악산 위에 떠 있는 도시의 달은 어둠에 빠진 세상을 은은하게 밝히기 보단 이미 이 땅을 비추는 가로등과 어지러운 간판불빛에 간섭되어 취객의 불콰한 얼굴마냥 애처로운 붉은 빛에 물든채로 구역감과 함께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논문을 위해 워드 창을 열었다가…. 막히고 막혀 .. 페북창에 화풀이를 ㅜㅜ …. 테러를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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