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4>김민기 선생님

<사람 이야기 #4>김민기 선생님

한창 미국을 여행하던 중에 김민기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분을 직접적으로 알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사람 이야기’ 카테고리에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위암으로 투병중이시라는 이야기를 한참 전에 들었기 때문에 올 것이 왔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가슴 한 켠, 머엉한 기분은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거쳐가는 숙소에서 겨우 잡은 인터넷으로 그가 93년도에 발매한 전집 음반 4장을 오프라인으로 들을 수 있게 다운 받았다. (미국 시골은 스트리밍이 잘 안되더라.) 콜로라도에서 와이오밍으로 넘어가는 꼬불꼬불한 미국 시골길을 달리며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목소리로 귀를 적셨다.

나는 대단한 음악 애호가도 아니고, 음악을 열심히 찾아듣지도 않는 편이다. 게다가 이제는 귀도 (더 정확히는 뇌의 청각피질이…) 굳어 버렸는지 새로운 음악은 입력이 잘 안된다. 그래도 언젠가부터 아주 가끔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냥 김민기 선생님 음악을 젤 좋아한다고 이야기해왔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의 경우 ‘누규?’ 정도, 조금 아는 사람은 ‘운동권 가수를 왜?’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에게 수많은 음악 외적인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내가 실제로 한 음악가가 발매한 모든 음반을 들어본 몇 안되는 분 중 하나이며, 지금도 종종 찾아듣는 음악들이고,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음악이니 나의 발언은 그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론일 뿐이다.

어릴 적에는 유명한 양희은의 ‘아침이슬’, ‘백구’ 노래는 사실 김민기란 사람이 작곡했다더라… 정도로 그를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학교에 들어가 형을 통해 앞서 언급한 4장의 CD로 된 그의 전집을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사람이 다른 노래도 많이 만들었네…. 음색이 엄청 낮네…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2002년 스리랑카에 가게 되면서 그의 음악들에 더 깊이 다가가게 되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콜롬보 잠부가스물라빠러(한국말로 번역하면 잠부가스 나무 길) 28/2B의 나의 집. 짓다가 멈춘 3층 집에 (집주인은 내가 낸 집세로 집을 조금씩 올리던 중-_-;;) 홀로 입주하여 살던 그 시간. 집으로 들어오면 열대의 뜨거운 열기를 피하기 위해 후다닥 샤워를하고, 팬티만 입은 채로 2층 거실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천정에 달린 팬아래 널부러져 있던 시절이었다. 더위와 더불어 하릴없이 주어진 시간 앞에 몇 십 루피 짜리 싸구려 인도산 기타와 김민기 선생님의 노래, 그리고 김창남씨가 엮은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얇은 ‘김민기’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그 책의 뒷면에는 전집에 나오는 노래들 중 일부 노래들의 멜로디 악보와 간단한 기타 코드가 실려 있었다. 가뜩이나 손가락도 짧고, 악기에는 재능이 없어 C도 G도 F도 더듬거리며 잡던 수준이었지만 어디선가 찾은 코드표를 보고 김민기의 노래를 하나하나 따라 쳐보는 즐거움이 그때는 일상을 달래주는 큰 낙이었다.

그의 가사는 대체로 덤덤하지만 때론 머리속 깊숙한 곳에 들어와 떠나질 않는다. 가뜩 외로운 타국생활 중 윤모 여인이 가져다 준 이루어지지 않는 정염(情炎)으로 인해 ‘내 몸이 떠는 것’이, ‘사랑과 미움과 배움에 참을 너로부터 가르쳐 받지 못한 탓’ (두리번거린다, 1집)임을 알았다. 지금은 매일매일 상당히 많은 양의 가르침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뭘하며 살아야 할지 때론 막막했지만 ‘여러 갈래길, 누가 말하나 이 길뿐이라고’ (길, 2집) 어딘가 나에게 맞는 길이, 혹은 사람이 있겠지 믿었다.

그때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의 말들은 여전히 나에게 속삭인다. 명절이나 주말 시골에서 부모님,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올라 올 때면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병드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서울로 가는 길, 3집)의 서글픔이 가슴 저편에서 늘 밀려온다. 시골의 논밭이 생각날 때면 ‘해저무는 들녘 밤과 낮 그 사이로'(그 사이, 2집) 를 찾아 듣는다. 살다보면 늘상 마주치는 외적인 번잡함, 미쳐 내려놓지 못하는 내 안의 욕심을 마주할 때면 그저 ‘내가 시냇가에 돌멩이면 좋겠네'(아하 누가 그렇게, 4집) 하면서 잠깐 도피해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훌쩍 커가는 모습을 보며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더 늙게 되면 무엇을 꿈꾸고 살까? 내 아버지 세대에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내 세대에라도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가세'(늙은 군인의 노래, 3집)를 바래나 볼까?

먹먹한 마음으로 4장의 앨범을 또 정주행한다. 약 45분짜리 앨범 4장이니 3시간 가량 되는 시간이다. 학전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확히는 음반사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냈다는 이 앨범들 덕분에 그나마 나는 이 귀한 3시간을 얻었다. 앞으로의 내 삶에 있을 빈틈들에서 이 시간들이 함께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감사한 마음 한 켠에 늘 빚진 마음이 있다. 학전 바로 코앞을 10년 넘게 오가면서 제대로 한번 들러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1번 정도 거기서 타의로 연극을 봤던 것 같다. 나는 콘서트, 뮤지컬, 연극 등 공연 관람은 별로 관심이 없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도 방법이 없네……

사실 캐나다에 연수를 와서도 기타 하나를 장만해서 예전에 하던 것처럼 그의 음악을 카피하고 있었다. 그의 노래들 중에서 ‘아하 누가 그렇게’, ‘식구생각’, ‘서울로 가는 길’, ‘고향가는 길’ 등 토속적인 가락을 가진 노래들은 단소로 대략이나마 멜로디를 붙일 수 있다. 그의 노래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참 좋아하는 ‘아하 누가 그렇게’를 단소를 입혀 짧게 녹음을 해봤다. 미욱한 결과물이지만 연습하고, 녹음하며 선생님을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아빠가 기타로 계속 같은 노래를 치는 것을 보던 둘째가 젓가락으로 티슈곽을 두드리며 신나는 리듬을 더해줬다. 엉성한 결과물이지만 애비와 아들의 즐거운 한 때를 김민기 선생님이 먼 곳에서 보시면 한번쯤 싱긋이 웃어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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