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부처님 오신 날 대체 공휴일이 있었던 지난 연휴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께서 과음을 하시고 주방에서 넘어지셨는데 안타깝게도 좌측 비골골두가 골절되셨다. 마침 시골에 내려가 있던 형 누나가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왔다. 구태여 서울로 모실 것은 아니었지만…. 시골에 두 노인네를 남겨두면 무슨 이벤트가 일어날 지 모르고 가뜩이나 전위없이 잘 유합되어야 하는데 재차 낙상이 걱정되었다. 무료하게 일주일, 낯선 서울에서 자식 집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시던 아버지를 두고 볼 수 없었다. 마침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이라 일요일 오후에 아버지를 차에 태워 모시고 경상도 땅으로 달렸다. 여름이 기운이 무르익어가는 산과 녹음, 쾌청한 하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말 그대로 탈출이었다. 토현으로 다가갈수록 밝아지는 아버지의 표정과 활달한 모습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이 다 서울에 있으니 두 분을 서울로 모시자 했더 우리 삼남매의 생각도 일종의 폭력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에게 서울은 우리가 저멀리 유럽이나 북미에 생활하는 것처럼 낯설고 두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건수를 생각한다. 이제 포항 볼락 시즌이 거의 끝물이다. 그래도 밴드에서 확인한 최근 야간 볼락 조황이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혹시나 싶어 연락해보니 일요일 야간 볼락 털털이 낚시배가 자리가 남아 있단다. 얼씨구나 자리를 잡았다. 마침 포항에 정현이형도 시간이 된다고 해서 두 사람이 볼락배를 타기로 했다. 의성에 도착해서 아버지를 어머니께 인계해드리고, 가져간 짐들을 정리하고 서둘로 포항으로 나섰다. 최근에 영덕-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을 해서 포항가는 길이 무척 좋았다. 고속도로 좌측을 뻥 뚫린 동해바다가 보인다. 어서 저 바다로 나가고 싶다. 익숙한 포항 신항만에서 정현형을 만나 해가 거름해지는 저녁 7시에 배는 바다로 나아갔다. 파도도 바람도 거의 없는 잔잔한 밤바다. 조명아래 비춰지는 바닷속은 따듯해지는 수온 탓인지 정신없이 바빴다. 멸치 볶음 수준의 작은 멸치, 그 멸치를 먹는 손가락 크기의 멸치, 그 멸치를 먹는 고등어, 전갱이, 날치, 이 녀석들을 사냥하기 위해 어슬렁 거리는 방어 부시리, 무리지어 UFO처럼 움직이는 총알 오징어떼.. 화려한 포항제철과 조선소의 불빛 만큼이나 자연도 분주하다. 보지않고 관심이 없으니 모를 뿐이다.


쓸만한 씨알의 볼락, 열기, 전갱이가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재미진 낚시는 새벽 1시가 되어서 끝이났고 정현이형 집으로 노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갔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냥 잘 수는 없다. 씨알좋은 볼락과 전갱이를 골라 회를 뜨고, 작은 놈들은 소금과 밀가루를 묻혀 튀기듯 후라이판에 구웠다. 자고 있던 정현형 큰 아들 은규도 일어나 회와 구이를 맛있게 먹는다. 솔직히 나는 먹는 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누가 맛있게 먹어주면 세상 행복하다. 바다사나이의 소울을 가진 은규는 구운 생선의 대가리까지 야무지게 씹어 먹는다. 고맙다. 삼촌이 자주 내려와서 이렇게 해줄게. 정현형과 회와 구이와 한잔을 나누며 새벽까지 이어가다 골아 떨어졌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씻고 의성으로 출발했다. 아버지 어머니께도 회맛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오전 11시쯤 토현에 도착해 남은 생선들을 정리하고 정갈하게 볼락과 열기 회 한접시를 떴다. 사실 의성에 온 주요 목적은 시골 뒷방에 있는 솔송이 담금주 1통을 압수하기 위해서였다. 거대한 담금주는 아버지를 다시 쓰러뜨릴 것이다. 그렇지만 생이 그렇게 야박하기만해서 되겠나. 이 좋은 회에 한잔 생각이 안날 수 없어 딱 한잔 떠서 요것만 드시라고 하고 회를 차렸다. 내륙 사람이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깔끔한 맛의 볼락회는 그럭저럭 잘 드신다.

어머니께서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해주셨다. 특별할 것이 없는 소면 국수에 익숙한 호박나물과 계란 지단, 그리고 양념장을 얹어서 먹는 국수이다. 첫 젓가락을 먹는 순간 갑자기 머리속이 번쩍하고 올라온다. 요즈음은 솔직히 뭘 먹어도 심드렁하다. 비싼 음식도, 자극적인 정크푸드도, 기대에 차서 한 입 베어물면 바로 실망감 몰려오고 물린다. 다 그 맛이 그 맛이고 별 대단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국수는 뭐지? 어릴적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께서 뚝딱 내어주시던 그 국수와 똑같은 국수… 한 그릇으로 모자라 남은 육수에 한번 두번 더 면을 넣어 말아 먹던 그 국수… 세상에 하나뿐인 국수… 어머니 국수… 순식간에 나를 둘러싼 세계는 수십년 전으로 돌아가 그 여름으로 가 있었다. 일전에 냉부해에서 배우 박철민이 정호영 세프가 해준 조기찌게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나는 배우다운 과장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또다시 멀었으나 국수 한그릇이 남긴 여운으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