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길 공항, 비행기안에서 써두었는데 왠지 머리속이 아직 정리가 덜 된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중국에 관한 책 몇 권을 구입해서 읽으며 다시 중국방문기를 곱씹다 정리했다.
지난 4월 초에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근에 나는 상지재활로봇을 개발하는 과제를 하게 되었는데 요즘 워낙 중국이 이 분야에서 치고 나가다보니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검색하던 중 China International Medical Equipment Fair (CMEF)라는 행사가 4월에 상해에서 예정되어 있데서 무턱대고 신청을 했다. 혼자 가기는 심심해 같이 갈 동료들을 수소문 해봤지만 잘 성사되지 않았다. 가끔 홀로 먼 곳에서 며칠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포에서 상해까지 비행기는 한 시간 반이면 충분했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거리에 두 배 조금 넘는 거리였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 가깝다면 무척 가까운 곳이다. 상해 인근에 도달하였을 때 보이는 바다는 말 그대로 ‘황해’ 였다. 서해가 탁하다지만 사실 조금만 멀리나가면 동해 못지 않게 서해 바닷물도 푸르다. 그러나 반대편은 다르다. 양쯔강이 쏟아내는 토사를 바다가 온전히 소화해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과연 대국답다.
기대반 의심반 찾은 전시회 첫날 아침은 입구부터 사람을 압도했다. 상상을 초월하게 큰 전시장의 규모에 걸맞게 엄청나게 모여든 인파는 내 육체와 정신을 짓눌렀다. 거대한 원형 중앙 광장을 코엑스 만한 전시장 8개가 꽃잎처럼 감싸고 있다. 사전 조사한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전시장을 무작정 주유하고 다녔다. 반에 반도 보지 못했는데 이미 다리가 아파온다. 이 친구들은 앞으로 인간이 시행하는 수술과 시술을 다 로봇으로 바꾸고, 모든 것을 AI로 대체할 모양인가보다. 거대한 수술용 로봇 부스만 십수개가 있고, 시뮬레이터 마다 시연을 경험해보고 싶은 참가자들이 줄을 서 있다. 내 관심 분야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특히 재활 쪽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이었다. 수많은 재활로봇 업체들이 부스를 채우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제품은 대동소이하고, 외국의 유명한 제품들을 베끼거나, 혹은 서로가 서로를 복제한 느낌이지만 쉽게 폄훼할 일이 아니다. 이 엄청난 규모와 경쟁 자체가 본질이다. 설령 좀 부실하면 어떤가? 누군가 망하고 실패하면 지체없이 다음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한 놈이 남다른 창조성으로 독보적인 우위를 가지게 되면 모두를 뒤집고 일어선다. 소위 말하는 Tinkering의 장이고 인해전술이다. 자연의 방식이 본래 그러하다. 유기체가 그렇게 진화해왔고,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DNA의 돌연변이가 의도를 가지고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지적재산권, 저작권, 개인정보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런 개념들조차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근대화의 과정에서 ‘탑재된’ 매트릭스일지 모른다. 마침 중국으로 떠나던 날 점심에 캐나다에서 온 캐내디언 지인과 점심 식사를 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일, 국제정세의 불안정성에 대화하다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것이 가지는 심각한 아이러니에 대해 주고 받았다. 무척이나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따져보면 Immoral한 것보다 illegal한 일을 모두가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 묘하게 와 닿는다. 좀 베끼고 따라하는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인가. 누구나 알고보면 조금씩 모방하고 있다. 학습된 Neural Net처럼 존재 자체가 모방의 집적이다. 일단 살아남는게 우선이다. 그렇게 해서 살아 남으면 된다. 불과 비행기 한 시간 반 거리에서 이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무섭다.


캐나다에서 소위 말하는 대국인들, 중국인/인도인들에게 선입관을 가지게 된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밈처럼 돌아다니는 중국인, 인도인들에 대한 여러가지 부정적 이미지들을 나도 실제로 많이 겪었다. 직접 와보니 그 또한 자연스럽다. 몇 다리만 건너면 다 연결이 되는 한국 사회와 달리 십억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무작위로 만나는 타인은 훨씬 익명성이 크다. 좀 더 수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베이즈 정리에 따른 사전확률이 다른 것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남이 날 어떻게 볼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어차피 지나가는 공기 분자와 다를 바가 없고, 나의 생존에 무관하다. 오히려 해가 될 확률이 클 수도 있겠다. 내가 길에서 똥을 싸던, 오줌을 싸던 그걸 누가 본들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신 나와 관계성이 확실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중국인과 한번 친한 친구가 되면 아주 극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실제로 캐나다에서 유사한 경험이 있다. 이런 인구조건에서 타인의 존재는 양 극단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내 반팔 티셔츠 중 하나는 습도가 조금만 오르면 걸레를 빤 냄새가 심하게 난다. 입고 다니기 민망할 수준이다. 마침 전시회를 나와 이곳저곳을 다니는데 냄새가 스믈스믈 올라왔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갈아 입을까 하다가 맘을 바꿨다. 어차피 뭔 상관이람…. 내가 냄새가 나건 말건 대국에 왔으니 대국답게 그냥 다니자. 그러다 찾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에서 한 무리의 한국인들을 만나자 자꾸 멀치감치 떨어지려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아~ 이것이 소국인의 비애인가’
아무 생각없이 왔는데 처음 찾은 상해는 무척 매력적인 곳이었다. 사람들도 서울사람들 보다 더 쌔끈하고, 친환경 정책 덕인지 공기도 깨끗하다. 생각해보면 이미 100년 전에 카이로, 캘커타, 버마, 싱가포르, 홍콩을 잇는 아시아 물류체인의 허브였다. 서울에서 소구르마를 끌고 있을 때 상해에는 비까번쩍한 고층 건물들이 마천루를 이뤘을 것이니 비교 자체가 우습다. 그 유명하다는 와이탄 야경, 빌딩 숲을 보며 작년에 방문했던 시카고의 빌딩숲이 묘한 기시감으로 다가왔다. 시카고가 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곡물이 미시간 호숫가에 석조건물로 화한 것이라면, 상해는 대륙의 충칭, 우한, 난징을 지나온 거대한 양쯔강의 에너지가 응축된 덩어리가 아닐까? 심지어 와이탄 주변의 오래된 빌딩들은 시카고의 그것들과 유사하게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의 상층부를 꾸미는 그리스 신전 풍의 기둥 장식, 각종 문양의 조각들이 대표적이다. 사실 난 이 모습들을 볼 때마다 무언가 불편함과 애처로움을 느낀다. 이 모양들이 뭐라고 이 먼곳까지 와서 저러고 있나. 수 십, 수백 만년이 지나 저 건물들이 다 땅속에 파묻히고 나면 그때를 지배하는 인류 혹은 어떤 존재들에게는 이 양식들이 암모나이트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얘네들은 뭔데 자꾸 지구 이곳저곳에서 나오지? 돌이켜보면 내 애처로움이 근원은 아무래도 한국 땅의 후락한 웨딩센터들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리스 풍의 장식들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빌딩 숲의 아름다움보다도 상해에서 더욱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만난 구시가지의 구석구석이었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의 거대한 줄기는 이 시가지가 이렇게 만들어진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증거이다. 고층건물도 몇 년이면 뚝딱 짓지만 큰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한 블럭, 한 블럭이 거대한 벽 같은 것에 둘러쌓여 있다. 길가에 노출된 바깥은 대부분 상가지만 그 안쪽은 당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다 찾은 작은 문을 비집고 들어가면 또다른 골목길의 세계가 열린다. 빼곡히 들어찬 거주지와 길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네들의 모습이 홍콩영화처럼 친숙하다. 이들의 폐쇄성과 또 정반대의 관계성이 거주지 형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고보면 2018년에 산재재활에 대한 발표를 초청받아 쓰촨성 청두를 방문하고 8년 만에 중국 방문이다. 제대로 중국을 경험한 것이 그때 처음이었고 상당한 이질감을 가졌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때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너무 준비없이 왔다. 알리페이 달랑하나 깔고 왔는데 불편한 것 투성이다. 구글 플랫폼에 모든 걸 의지해서 살다보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만들어야 할 강의록과 써야할 원고가 있는데 이건 뭐 손을 댈 수가 없다. (유심을 사오는게 족보라는 걸 몰랐다) 핑계가 아주 완벽하다. 호텔방에서 남는 시간에 붙들고 있던 책만 주구장창 읽었더니 600페이지 짜리 책 한권을 출장기간 중에 뚝딱 소화할 수 있었다. 그동안 너무 좁은 세계관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미국, 일본, 중국, 약간의 유럽 정도만 변수로 놓고 있었다. 당장 호르무즈의 좁은 해협만 닫혀도 이 난리가 나는게 현실인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 불편함이 예사롭지 않다. 박람회의 엄청난 인파에도 불구하고 서구인의 얼굴은 많지 않았다. 와이탄의 빼곡한 인파에 포함된 소수의 서양인들 조차도 태반이 슬라브 계통으로 보였다. 우리가 의심없이 받아들여온 세계화는 이미 변곡점을 지나 탈세계화(Deglobalization)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출장의 소감을 하나의 단어로 정리해보았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이미 게임의 판세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넘어가 버렸다는 생각…. 한반도에 섬처럼 갖혀버린 나의 조국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비행기 타기 직전에 찾은 상하이 박물관에서 힌트를 조금 찾은 것 같다. 사실 이 두려움이 원래 디폴트였다. 어쩌다 지난 수십년 중국을 무시하는 아주 특이한 시기를 우리가 지나온 것일 뿐이다. 강남 문화(Jiangnan culture)의 진수를 담은 송/원/명/청 시대의 유물들은 지금 바로 우리 일상에 가져다 놓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우아함을 보여준다. 강남의 강은 원래 한강이 아니라 양쯔강이었다. 당나라로 간 최치원부터 이미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중국 땅을 밟고 나와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짓누르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복속되지 않고 버텨온 역사가 있다. 그것이 어딘가 우리의 DNA에 남아 있지 않을까? 하/은/주 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유물들을 따라 보면서 그들 역시 수없는 부침과 극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는 것은 매한가지임을 느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이 부흥하던 시기에는 언제나 열리고, 너그럽고, 통할 때 였고, 그 반대는 망했다. 지금은 무섭게 질주해나가지만 언제 또 폭싹 꼬꾸라질 수 있다. 우리는 그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방심하지 않고, 올테면 와보라는 자세로 우리의 일을 하루하루 하면 되지 않을까? 과제를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더 많이 다녀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포공항과 서울 시내와 서울 사람들이 왠지 후줄근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