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야기 #2>…Korean black customer
벌써 여기 온지 한달이 조금 지났다. 무지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만 풀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감사하게도 주인분, 그것도 한국분이 사시던 full-furnished house라서 가구나 집기를 크게 마련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을 기르시던 분들이라 홍이겸이에게 딱 필요한 물품들도 대부분 갖추고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갑자기 세탁기가 고장나면서 상황이 발생했다. 매일매일 빨래가 쌓이는 생활구조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어차피 오래된 물건이라 본인들도 바꿀 생각이셨단다. 건조기와 함께 새것으로 바꾸고, 증빙 보내면 처리해주신다고 하셨다. 역시…. 부랴부랴 코스트코 온라인으로 LG 제품을 주문을 넣고 당분간은 인근의 코인 세탁소를 뚫어서 (우연하게도 주인이 교민분.. 많은 도움을 얻었다) 버터왔다.
드디어 오늘 오전에 세탁기가 배달오는 날…. 새 세탁기로 세탁을 돌리고 오후에는 햇살이 좋아 차를 타고 근처 호수공원에 갈 마음에 들떠 있었다. 마침내 딩동~ 벨이 울리고 세탁기가 도착했다. 아마도 중동 쪽에서 이민온 듯한 배달기사 분들은 도착하자마자 세탁실을 들어와서 공간을 확인하였다. 이후 그들은 기존 세탁기가 disconnect 되어 있지 않아서 본인들은 설치를 할 수가 없고 그냥 새 세탁기와 건조기를 가라지에 내려두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린가…. 배달을 예약할 때 아내 말로는 기존 세탁기는 수거해간다고 했는데 disconnect를 소비자가 직접해야 한다니… 재차 확인을 해도 본인들 업무 리스트에 disconnect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오늘 남아 있는 배달이 여러 건이라 여기 쏟을 시간이 없다. 일단 두고 가니까 따로 customer service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아라… disconnect은 알아서 해라 우리도 모르겠다. 하고 서둘러 나가버렸다. 그들이 떠나고 아내가 이곳저곳 연락을 하는 사이에 내가 세탁기를 좀 보니 disconnect이라는 것이 별게 아닌게 기계들을 살짝 밀어내고 뒤에 냉수/온수 수도 호스를 풀고, 배구수를 뽑고, 건조기에 알루미늄 에어덕트를 빼면 되는, 오 분도 걸리지 않는 작업이었다. (무거운 기존 물건을 빼내는 것은 배달기사가 할 수 있다고 확인하였다)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은 오자마자 연결이 해제되지 않은 것을 먼저 보고 쾌재를 부르는 듯 했다. 얄밉게도……… 아내가 새로 설치를 잡았는데 그건 다음주 수요일에나 가능하고 설상가상으로 135달러의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라지에 박스에 쌓인 세탁기와 건조기를 두고, 열받은 김에 기존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혼자 낑낑거리며 가라지에 내려두고…. 의자에 앉아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메타인지를 동원해 달래보았다. 사실 배달기사분들에게는 별 불만이 안 들었다. 사실 한국 같았으면야 이리저리 까짓꺼 후다닥 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은 어차피 프로토콜 대로 움직였으니…… 코스트코 이 자식들은 그러면 배달 안내 메일에 한 줄이라도 좀 써놓지…. (재차 확인해도 배달 안내 메일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100% satisfaction guarantee라는 말은 있었지만-_-;;) 이런 황당한 사태를 만들다니….. 아니 어디 구석에 또 조용히 박아 놨겠지… 휴… 뭔가 익숙한 감정이다. 비슷한 일이 생겨도 외국에 이방인으로 살면 더 손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말이 서툴고 이곳의 시스템에 익숙치 못하다고 해서 오히려 더 차별 받는 듯한 기분 말이다. 스리랑카 살 때도 비슷한 상황들이 많았다. 특히 택시기사 (현지에서는 바자지라고 부름)와 가격은 흥정으로 이루어 지는데 가끔 외국인이라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때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현지어가”오야 비쑤떠? (너 미쳤냐?)”, “폴리스 얀느 오네더?(경찰 가고 싶냐?)” 였다. 여기서 당황스럽거나 말문이 막히면 자동적으로 그때 입에 달고 살던 단어들이 상기된다. 부끄럽지만 때론 실제로는 차별과 무관함에도 스스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던 거 같다. 지금 상황도 혹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냥 넘어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특히 저 100% satisfaction guarantee말이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분명히 홈페이지나 어딘가 우리가 서툴러서 못봤겠지만 배달기사는 disconnect를 하지 않는 다는 조건이 있긴 있을 것이다. (여기는 말그대로 조건의 나라이다….. 정말 세밀한 것들까지 조건을 달아놓는다) 문득 은사이신 오병모 교수님이 연수를 다녀오셔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미국은 딜(deal)의 나라인 것 같아요. 정해진 것이 없고 deal을 해서 서로 맞추는게 중요한데 그걸 잘 못하면 본인도 모르게 손해볼 수 있어요. 병원비도 네고를 하면 깎입니다.” 그래…. 미국이나 캐나다나 그놈이 그놈일테고…. 아무리 어딘가 써놨어도 고객에게 충분히 공지를 하지 않고 저딴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100% satisfaction guarantee와는 다른 거 아닌가? 짧은 영어지만 용기내서 전화해보자.
자동응답기의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어렵사리 연결된 상담원은 이딴 컴플레인은 익숙하다는 듯 메일에는 없지만 홈페이지에 내용이 있다고 ‘꺼지라’는 식의 응대를 시전하였다. 그 내용을 메일로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걍 홈페이지 찾아보란다… 그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보니 작은 글씨로 배달에 disconnect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뭐 예상은 했던 결과였다. 나는 일단 관련 내용은 인정하지만 제대로 메일로 알려주지 않고, 저렇게 후루룩 물건만 놓고 가버리고 나서 추가로 요금 지불을 하라고 하는 것은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 메일 보낼 때 미리 disconnect를 하라고 강조할 수도 있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더니 상담원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숨겨둔 카드가 있었다. 여기서 들은 바로 코스트코는 환불 정책이 아주 후하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여름에 보트나 패들보드 같은 것을 사서 호수에서 몇 번 타고 맘에 안든다고 환불해도 그냥 받아 준다는 것이었다. (한국도 그런가? 한국에서는 코스트코를 안 다녀서) 미리 확인한 가전 배달 환불도 물론 추가 패널티 없이 가능…….. OK. 자 상담원님아 그러면 나 이거 주문 취소 넣고 걍 똑같은 거 새로 주문 넣겠다. 아직 박스도 안 뜯었으니 걍 그대로 도로 가져가시고 새로 또 가져와서 설치해라. disconnect는 내가 이미 다 했다. 어차피 주문 넣으면 담주 수목 정도 올거니까 내 입장에선 135불 안내도 되고 하루나 이틀 더 기다라는 거는 뭐 나는 상관없다. 내말이 맞냐???
귀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수화기 너머 띠용?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갑자기 말이 느려지던 그는 메니저와 상의해볼테니 조금만 끊지말고 기다리라고 하고 한참 후에 다시 연결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경우는 One time exception으로 그냥 다시 공짜로 설치해 주겠단다….. 누군지 모르지만 메니저 똑똑한 친구인 것 같았다. 아마 다시 수거해가고, 새로 설치하는데 하청업체에 줘야할 돈이 135불보다 컸겠지…. 상담원에게 수고했다고 땡큐베리감사를 외치고 통화를 끊었다.
마! 이게 조선의 Black cumstomer다 !!!
여담1) 글은 유창한 것 같지만 사실은 더듬더듬, 더듬이였다. 캐나다 올 때 김민제에게 영어회화 관련해서 미드 West wing을 추천받아서 다운은 받아놨는데 사실 한국에서 바빠서 보진 못하다가 여기와서 에피소드 하나씩 보고 있다. 속사포 같은 대본과 원어민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어려운 구어 표현으로 유명한 미드라 한글자막으로 한번 보고, 영어 자막으로 다시 보는데 특히 이번 경우에는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정치 드라마다 보니 워낙 말싸움이 많고 꼬투리 잡고 빈정거리는게 많아서 그런가… 나도 그 느낌 살려서 이야기해서 더듬거려도 최소 톤은 좀 컴플레인 하는 듯 비춰졌을 지도 ㅎㅎㅎ
여담2) 유튜브 어디에선가 댓글로 유목(혹은 축산) 중심의 서구사회와 농경 중심의 동아시아 사회의 차이에 대한 재밌는 분석 글을 읽었다. 북미에 살면서 조금씩 체감하는 것 같다. 서로간의 계약, 조건, 합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을 규정하고 지키고…. 대신 어기면 알짤없고…. 어디가 우월하고 어디가 열등하다는 인식보다는 삶의 방식이 차이를 잘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