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1>

<사람 이야기 #1>

지지난 주 일요일 저녁 시골의 걸을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몇 일 전부터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결국 부고를 듣게 되었고 형과 나는 월요일 저녁에 일을 마치자마자 만나 서울에서 의성까지 어둠을 가르고 빈소를 찾아 할아버지를 뵙고 올라왔다. 올해 구순이시니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셈이지만.. 노인들이 가질 수 있는 온갖 만성질환과 심혈관계 질환, 결국에 한쪽 다리로 가는 혈관이 막혀 한참을 걷지도 못하시고 고생하시다 썩어 들어가는 다리에서 온 패혈증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듯 하다. 어떤 의미에서 할아버지는 노쇠한 육신이 주는 고통에서 해방되신 것이 아닐까?

걸을집이라는 말이 아마 생경할 것이다. 우리 집안은 경북 의성 사곡면 토현리라는….골짜기의 끝에 있는 작은 산마을에서 모여 살았다. 나의 증조할아버지 대에 4형제가 있으셨는데 마치 대하소설의 스토리처럼 순서대로 큰집, 걸을집, 저짝집, 작은집으로 불리웠다.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가장 막내인 작은집이었고, 이후 할아버지, 아버지, 형과 나의 순서로 대가 이어져왔다. 걸을집 할아버지는 증조부 대의 걸을집의 대를 이은 분으로 나의 할아버지와 같은 항렬 (락자를 돌림자로 쓰시는) 이시고, 촌수로 따지자면 6촌 할아버지이니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남이나 다를 바가 없는 관계일 수도 있다. 막상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차에서 형과 나는 걸을집 할아버지의 본명을 잘 몰라서 엉뚱한 소리를 해대었다.

사실 걸을집 할아버지는 저짝집에 큰 아들로 태어나셨는데 걸을집에 아들이 없어 양자로 걸을집 아들이 되셨고, 친모가 아닌 숙모를 어머니로 모시고 평생을 모시고 사셨다. 옛날에 시골에서 이런 일이야 흔하디 흔한 일이었겠지만 걸을집 할아버지의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 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장례식은 내가 목격한 마지막 시골의 전통 장례식이었다.) 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어린 마음은 뭔가 매우 애잔했던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집안의 많은 사람들이 토현을 떠나 대구로, 서울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걸을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토현에 남아 계셨다. 15년 정도 전에 아버지가 퇴직 후 고향으로 낙향 하셔서 내가 늘상 토현을 왕래할 때도 항상 걸을집 할아버지를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무엇보다 6.25에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감각이 없는 우리에게 걸을집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원형이 되어 주셨다. 늘 인자한 웃음과 너그러움으로 우릴 맞아주셨다. 형과 나는 그런 기억이 선명하여 부고를 듣고 망설이지 않고 할아버지 영정을 뵈러 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어릴적부터 동물, 새, 물고기를 좋아하던 나는 시골에 갈 적마다 걸을집 할아버지를 붙잡고 귀찮게 해댔다. 옛날에 호랑이나 표범, 여우, 늑대를 보신 적이 있으시냐… 독수리를 보신 적이 있으시냐… 심지어는 귀신 본 적이 있으시냐고도 물어봤다. (없으시다고 했음) 무척 성가셨을 법도 한데 걸을집 할아버지는 한번도 물리치지 않으시고 친절히 대답을 주셨다. 중학교 때 어느 여름이었나? 시골에 갔더니 할아버지가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하시고 경작하시던 밭 옆에 큰 나무에 데리고 가셨는데…. 가봤더니 그 나무 구멍에 여름철새인 후투티 (추장새) 가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밭일을 하시면서 그 장면을 보시곤 내가 오면 꼭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조류 도감에서만 봤던 그 신기한 후투티를 처음본 나는… 물론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승하기 왔나~ 홍이하고 겸이는?” 하고 부르시던 할아버지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사진첩에서 어렵게 걸을집 할아버지의 사진을 찾아 올려본다.

할아버지, 부디 육신의 고통과 굴레는 홀연히 떨치시고 이 지구별, 아름다운 시공을 훨훨 날아 평안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토현에 가면 꼭 찾아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사람 이야기’라고 붙인 이유는…. 페북에 글을 잘 안쓰게 되는데 게으름도 있고, SNS를 잘 안하는 것이 더 쿨해 보이기도 하고… 뭐 그런 복합적인 이유 같습니다. 그런데 뭔가 쓰고 기록하고 공유할 버릇이 되지 않으면 점점 녹슬고 퇴화하는 것 같아서 …… 사람 이야기란 시리즈로 주변의 (좋아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정리하는 연습을 하려 합니다. 혹여라도 페친들의 피드에 민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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