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하늘이라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황금연휴라는 지난 추석 기간은 비와 구름에 지 배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짧게 해가 비추던 어느 날, 아내와 나는 새롭게 이사온 광진구를 탐험했다. 우리집 인근에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어린이대공원이 있다. 이 곳에 작은 동물원과 좋은 녹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도 가본 적은 없었다. 이제는 아이들은 우리를 따라 다녀주지 않으니 두 사람만 길을 나섰다. 정말 출산율이 낮은 것인가? 모처럼 좋은 날씨에 수없이 많은 유모차와 방방거리는 아이들이 대공원의 동물 사육사를 에워싸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피곤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녹지 내의 한적한 산책을 찾아 공원 구석으로 향했다. 어린이 대공원의 북쪽 경계는 구불구불하고, 중간중간에 동네와 연결문이 있어서 마치 공원과 마을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이 동네를 ‘능동’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캐나다에서 즐기던 주택 생활을 한국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주말에 가끔 아내와 인근의 주택단지를 수소문해서 여러 차례 탐방하였다. 농동도 수소문한 후보지 중 하나였다. 동네를 거닐며 이집 저집, 골목골목 분위기를 느꼈다. 군데군데 정성 가득 리모델링한 예쁜 주택들도 보이고, 익숙한 옛날 집, 복잡한 빌라촌이 뒤섞여 있지만 공원 때문인지 뭔가 침착한 따뜻함이 깃들여 있는 동네 같았다.
이야기를 옮겨 환자 이야기로 해보자. 신경외과에서 뇌수술을 받고 전과된 환자는 기능저하가 상대적으로 경미한 것에 비해서 꽤 복잡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십수년 전에 같은 부위의 뇌종양으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그 사이 재발을 하여 두 차례가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다시 또 재발하여 이번에 우리병원에서 두 번째 수술을 받은 것이다. 마침 부위는 우측 parasagittal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환자는 좌측 편마비, 특히 하지에 저명한 마비 소견이 있었고, 이로 인해 스스로 보행을 하기 어려운 상태로 재활의학과로 전과되었다. 그런데 이 환자는 단순한 운동 결핍으로 간주하기에는 영상 소견이 복잡하였다. 병변이 하지의 운동피질 뿐만 아니라 운동피질 앞쪽에 있는 전운동피질까지 침범된 상태였고, 운동피질 뒷 쪽의 감각피질도 멀쩡해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 환자의 운동이상, 보행이상은 단순한 힘빠짐, 위약 외에도 여러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전운동피질은 ‘운동계획’을 담당한다. 이 부분이 문제가 생기면 실제 운동명령이 운동피질에서 내려가기 전에 필요한 운동계획이 되지 않아 자발적인 움직임을 하라고 할 경우 잘 안되지만 운동계획이 필요없는 움직임, 예를 들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보행에서는 문제가 거의 없어진다. 발목을 움직여 보세요..라고 요청하면 못 움직이던 발목이 걸을 때는 거의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감각피질에 손상의 경우라면 힘도 있고, 자발적 움직임도 되지만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 필수적인 ‘고유수용감각’에 문제가 생겨서 운동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힘은 있어도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내가 처음 환자를 만났을 때에는 아직 수술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정유형으로 뚜렷하게 수렴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섯불리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런 환자들을 볼 때, MRI같은 영상검사나 검진결과 외에도 주목해서 봐야할 것이 전기생리학적 검사 (electrophysiologuc study) 이다. 그 중에서도 ‘유발전위 검사’라는 항목이 있는데 쉽게 표현해서 운동과 감각 두 경로가 뇌에서 손끝, 발끝까지 잘 연결이 되어 있는지 보는 검사이다. 운동의 경우 뇌의 운동피질을 자극하고 손, 발의 근육에서 측정을 하게 되고, 감각의 경우는 반대로 말초의 감각신경을 전기로 자극하고 뇌의 감각피질에서 신호를 얻는다. 하지만 이 신호라는 것이 신경계가 작동하는 정밀한 신호처리를 탐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현실적으로는 신호가 나온다 혹은 안 나온다 정도의 정보를 준다고 보는 것이 맞다. 노이즈가 들어갈 수도 있고,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검서라 사실 전공의들이 젤 싫어하는 검사 중에 하나지만 사실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꽤 유용한 정보를 준다. 이 검사는 수술중신경계감시라고 해서 신경외과 의사들이 수술을 하면서 동시에 측정을 하고 있다. 수술 중에 이 두 가지 신호에 이상이 발생했다면 신경외과 의사들은 그에 따른 조치를 통해서 최대한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신경학적 결핍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내 환자의 수술중신경계감시 결과는 감각신경의 경우 기본값 자체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전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 등으로 잏내 이미 감각신경피질에서 의미있는 신호를 얻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운동신경의 경우 기본값으로도 잘 나왔고, 수술 후에도 특별한 저하가 관찰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수술 후 상당히 심한 하지위약을 보였다. 이런 경우 수술 중 운동유발전위를 얻기 위해 시행하는 경두개전기자극기법의 본질적 문제를 떠올린다. 경두개전기자극기법은 환자가 마취된 상태에서 두피 양쪽에 전극을 꽂고 수백 볼트의 전압을 걸어 근육에서 신호를 얻는다. 환자가 깬 상태에서는 시행하기 어렵다. 문제는 실제로 어디서 자극이 일어나는가..에 있다. 뇌의 운동피질은 일종의 출력층 (output layer)에 해당되고, 거기서 긴 축삭을 뻗어 척수에 까지 다다른다. 이를 피질척수로라고 부른다. 경두개자기자극의 전압을 걸었을 때 순간 두개내에는 뼈, 각종 막들, 뇌척수액, 뇌조직 각각이 가지는 저항값에 따른 전위 분포가 걸리게 되고, 그 분포맵과 피질척수로의 경로 중 threshold가 가장 낮은 지점이 만나는 곳에서 자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자극위치는 피질부터 심부의 피질척수로 축삭까지 어느 곳이나 가능하다.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더 큰 전압을 걸수록 더 깊은 곳을 자극하게 되고, 실제로 자극값이 클 수록 유발전위의 잠시(Latency)가 짧아지는 것이 관찰된다. 다시 이 환자로 돌아가보면, 피질 주위에서 수술을 하고 있는데 유발전위검사는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계속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신경계는 근위부에 손상이 되어도 말단에서 즉각 이상이 생기지는 않는다. 따라서 수술중에는 운동유발전위 검사가 잘 나오지만 (검사상 음성) 실제 환자가 수술 후 깨어 나면 심한 위약이 나타나는 ‘운동유발전위의 위음성’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현상이지만 생각보다 잘 보고된 바가 없어서 나는 수 년 전에 대한재활의학회 학회지에 증례들을 모아 발표한 적이 있긴 하다. 여하간 이렇게 수술중신경계감시를 한 환자는 재활의학과에서 와서 수술 후 유발전위를 검사를 다시 해보게 된다. 수술 후에도 마취하고 수백 볼트를 거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전기 고문이다) 이 때는 자기력을 이용해 피질 위주로 자극을 한다. 이 기법은 ‘경두개자기자극’으로 부른다. 환자는 이 당시 상지기능은 상당히 좋아져 있었고, 발목의 힘도 미미하게 좋아진 상태라 기대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상지, 하지 모두 신호가 잡하지 않았다. 임상상과는 배치되는 결과라 당황했지만 여러차례 수술과 방사선 치료에 따른 구조적 이상, 두개강내의 삼출물 축적 등에 의해 자기자극술로는 충분한 자극이 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을 했다.
이러한 복잡한 내용들을 머리속에 담으면서 이 환자의 팀회의를 소집했다. 애매할 때는 매일매일 환자분들과 몸을 맞대고 치료를 해주시는 치료사 선생님들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경청해서 듣고, 환자의 뇌영상 사진, 수술 중, 그리고 수술 후 유발전위 검사의 결과를 간략히 설명하고, 이 환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시나리오에 비추어 다시 한번 토론을 했다. 보행치료를 해주시는 물리치료사 선생님 의견은 근력이 조금씩 회복되는데 왔다갔다하는 경향이 있고, 확실히 그냥 시킬 때 보다 보행시킬 때 발목 근력은 조금 좋은 것 같아서 발목보조기를 어떻게 착용해야 할지 담당 의료진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상지를 주로 봐주시는 작업치료사 선생님은 확실히 근력에 비해 수행기능이 떨어지는 지점이 있어서 감각기능 부분이 저하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고, 편측무시 (우측 대뇌반구의 두정엽 손상 시 발생할 수 있는 독특한 시공간 인지장애) 경향도 있는 것 같아서 테스트를 해보겠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다가 보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이슈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모호한 것들이 선명해지기도 한다. 우선 이 환자는 고유수용감각 장애가 있는 것을 전제로 재활을 하기로 하였다. 통상 이런 경우 신경인성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환자는 수술 전에 자꾸 발생하는 좌측 경련으로 이미 꽤 고용량의 항경련제를 3종이나 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경우 신경인성통증이 가려져서 우리가 주목을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물리치료, 작업치료에서 시각적 보상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편측무시 양상이 동반되는지 여부도 체크하기로 했다. 또한 발목 보조기의 경우는 급하게 제작하지 말고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전운동피질의 문제가 있다면 수 개월 내로 많이 좋아질 수 있으니 굳이 서둘러 제작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여기까지라면 일반적인 뇌질환 재활 환자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번 팀미팅에는 최근에 우리병원이 시범사업기관이 된 ‘통합퇴원계획팀’의 사회복지사 분도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의료보호1종에 독거인 중년 여성이었다. 조금 의아했던 것은 간병을 해주시는 분이 가족은 아니라고 하고, 그러면서 간병인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환자를 집으로,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재활의학과 의사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어 조심조심 물어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을 접하는 의료일을 하다가보면 어쩔 수 없이 일종의 선입관, 색안경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의료보호1종의 환자들은 뭐가 어려운 사정이 많기도 하고, 해결이 잘 안되는데 의료진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들도 따라온다. 소위 말하는 demanding 하는 케릭터의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한꺼풀 경계의 시선이 내 Neural net에 자리잡는 것이다. 그래서 회의 전 사회복지사 분께 섬세한 상담을 부탁드렸다. 마지막에 발언을 해주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서 기대하지 못한 답변을 받았다. 이 분은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많은 돌봄을 받고 있어서 큰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거주지가 광진구인데 광진구에서는 이런 종류의 시범사업을 많이 유치해와서 장기적으로 보조기구 같은 것들을 지원해주는 사업도 있고, 지금도 독거인들이 공동생활하는 center에서 서로 돕고 살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간병을 해주시던 분도 거기서 함께 하는 이웃이라고 했다. 회의에는 처음부터 환자와 보호자가 참석해서 우리가 이야기 나누는 모든 것들을 다 듣고 있었다. 나는 환자분께 어느 동네에 사세요? 라고 물었다. 환자는 ‘능동’이라고 대답하고 오늘 이 자리에 회의를 하게 되어 너무 고맙다. 자세히 설명듣고, 본인을 위해서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니 이미 다 나은 것 같다. 어서 빨리 능동의 공동체로 돌아가고 싶다. 그곳은 참 평화롭게 따뜻한 곳이다. 라는 멘트를 주셨다. 환자분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왠일인지 갑자기 눈씨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당황했다. 하루 종일 이런저런 딱딱한 이야기들만 오가고, 쳇바퀴 같은 일들에 시달리다가 가끔, 아주 가끔 이런 번뜩하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래도 지난 주에 능동거리를 걸으며 느낀 햇살과 동네 풍경의 향수가 순식간에 겹쳐서 그랬다보다. 혹시나 이 감정을 들킬까봐 나도 광진구 주민임을 밝히며 농을 치는 것으로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