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비평 (1)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던 시절에는 정치관련 글은 거의 올리지를 않았다. 당연하지만 나도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 아무도 읽지 않는 블로그에서 글을 쓰게 되었으니 맘놓고 쓰자. 소위 말하는 정치 고관여층은 아니었다. 큰 관심은 없었고, 대선이나 총선 같은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만 좀 기사를 읽어보는 수준이었다. 기본 스탠스는 20대 시절의 독서, 가족의 역사적 내력, 형의 영향 때문인지 나는 소위 말하는 진보 성향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인정. 다만 지난 12.3 내란 이후 정치 동향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었다.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 같아 자제하려고 해도 한번 시동이 걸린 습관이 쉬이 벗어나지질 않는다. 언제쯤 자유로워질까?

최근에 여러 이슈들을 접하면서 많은 이쪽 진영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마음이 착찹하다. 시작부터 나의 스탠스를 전제하고 시작하자. 내란 이후 중립이라는 말은 없어졌다. 이미 다 자기 스탠스, 입장, 베이지안 확률로 이야기 하자면 사전확률을 가지고 있다. 사실 상 중립이라는 말처럼 허망한 단어가 없다. 다만 현상을 최대한 자연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부분은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은 말그대로 중립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전자도 중립이고 물리학 법칙도 중립이다. 모든 과학이 수학처럼 완전히 중립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저에 중립을 전제한다. 최근에 논란이 많은 유시민의 정치비평이 가지는 독특함이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그의 독서이력은 단순히 역사 뿐만 아니라 (역사는 경제학과 함께 가장 중립과 거리가 먼 학문의 분야일 것이다) 자연과학의 다양한 영역까지 섭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물학과 유전학, 인간 군집의 여러가지 현상들 안에 움직이는 거부할 수 없는 과학의 원리가 그의 비평 안에 숨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비평가를 잘 보지 못했다. 그의 힘의 본질은 바로 그 부분에 있다. 나 역시 정치적 중립이라는 입장 보다는 자연과학적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 자연과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점은 지난 2000~3000년, 혹은 산업화 이후 수백년 간 진화의 힘이 유전자 집단 및 표현형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지금의 인류는 호메로스 시대의 인간과 다를 바가 없고, 춘추전국시대와도 다를 바가 없다. 수많은 현대인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거기에 나오는 인간과 지금의 인간이 99.99% 동일하다는 점을 항상 상기해야 할 것이다.

우선 현재의 시점에서 상태를 간략히 정리를 해보자. 무려 내란을 겪고도 과반을 넘기지 못하고, 약소한 우위로 진보진영은 집권을 했다. 이재명 정권은 집권 이후 특유의 경쾌한 속도감으로 국정과 민심을 장악했다. 지지자들에게는 효능감을, 반대하던 사람들에게는 어? 일은 똑부러지게 하네 .. 하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러한 장미빛 전망은 불과 6개월 정도 만에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로 덮여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 전당대회를 거쳐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더 이상 하나의 당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쪼개져 버렸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점점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몇 가지 포인트를 축으로 전망을 해보자.

1) 뉴이재명이라는 그룹

공취모 모임 이후 두드러진 뉴이재명이라는 집단, 현재는 김민석 대표를 떠받치는 그룹으로 간주되는 일련의 사람들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자. 손가혁, 경기동부연합, 구 운동권 NL 계열 등이 암약하고 있다는 음모론적인 관점을 제하고 살펴보자. 이들의 정체성은 집단적 컴플렉스, 일종의 신분상승, 혹은 입신양명을 동기부여 설명하는게 가장 타당할 것 같다. 나름 자기 위치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가지고 있지만 뛰어넘을 수 있는 1인자가 항상 앞서 있는 상황, 본인들도 1인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들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성이 얼마나 견고한지 누구보다 잘 알지만 (바로 옆에서 함께 했으니) 속으로는 나도 언젠가 1인자가 될 수 있다 혹은 되고 싶다는 비수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다. 그동안 1인자의 횡포(?)에 못이기고 엎드려 따라갔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열렸다. 나도 이제 1인자가 될 수 있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의학도라면 맨날 찌글찌글한 SCIE 저널에 겨우겨우 논문을 싣다가 드디어 나에게도 NEJM, JAMA, Lancet같은 저널에 내 논문이 accept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보자. 이들이 얼마나 절실한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서사는 일리아스에 나오는 안티누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학과 영화에 등장하는 말그대로 뻔한 구도이다. 이들의 조롱과 억지는 말그대로 불안감의 표출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들만으로는 모든 것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너머를 봐야 한다.

2) 진짜 힘을 가진 사람들

이 혼란의 가운데 잠잠한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이 사회를 움직이던, 혹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조중동과 대기업, 법조 엘리트를 포함한 진짜 기득권 세력이다. 아마 이들은 현재의 상황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조급하지 않다. 주식 투자로 말한다면 두둑한 자본을 가지고 주가가 폭락해도 상승세를 대비해 버틸 여력이 충분하다. 이들이 보기에 민주당 내부의 반목과 분열은 거의 단타매매로 돈만 버리고 바보되는 개미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나마 진짜 그들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소수의 만만치 않은 녀석들, 돈도 안 통하고, 위협도 통하지 않는 무리들…. 진짜 치워버리고 싶은 이들을 왠 어중간한 놈들이 알아서 처리해주고 있다. 말그대로 이이제이(以夷制夷)와 다름이 없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심정으로 이 판을 보며 언제 이 멍청한 놈들이 단체로 나자빠질지 타이밍을 노린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카드을 만지작 거리며 언제 그 패를 꺼내어 쓸지 수없이 계산하고 시뮬레이션을 한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영원한 힘의 유지이다. 단순히 나만 유지하는게 아니다. 나의 자식, 자손과, 나와 비슷한 재력, 지적 능력과 도덕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 만이 이 세계를,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주도하겠다는 다짐이다. 욕망의 동기부여 측면에서 2인자들의 열등감에 비해 컸으면 컸지 절대 모자르지 않다. 한편 그런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재명 정권이 이 그룹과 연대해서 말그대로 구조적 다수,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글쎄…..생물학적 관점에서 아니올씨다. 이들이 굴복하는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총칼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조선일보가 박정희를 찬양하고, 전두환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른 것은 총과 칼의 힘이다. 총과 칼이 없다면 귀족주의의 배타성을 이길 수 없다. 혈연과 그보다 다소 약한 학연&지연으로 이너서클 안에서만 해먹겠다는 것 또한 인간의 유전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코드이다. 이들 눈에 지금 정권의 무리들은 한 테이블에 앉고 싶지도 않은 한 낯 어설픈 얼치기, 뜨내기, 완장찬 머슴들로 보일 뿐이다.

3) 보수정치세력

국민의힘은 말그대로 죽을 쑤는 듯 보인다. 장동혁 당대표는 여전히 극우 세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많은 민주당쪽 사람들이 그나마 저쪽이 이쪽 못지 않게 삽질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다. 장동혁이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그는 22년 재보궐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재선을 거쳐 정계입문 3년 만에 보수정당의 대표에 올랐다.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카멜레온처럼 한동훈을 이용해야 할 때는 한동훈에 붙었고, 윤어게인이 붙어야 할 때는 윤어게인에 붙었다. 절묘한 스텝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지점을 활용하는 영악한 인물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수의 이재명이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계산이 나름 치밀하고 언제고 극우의 이미지를 벗어나는게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히 손절을 칠 인물이다. 아마 윤석렬이 대법원 판결로 내란법으로 확정되는 이후가 되리라 짐작된다. 그때 즈음이면 정말이지 윤어게인은 비가역적인 상태가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갈 것이다. 장동혁은 한고조 유방처럼 조급해 하지 않고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장동혁만 있지 않다. 한동훈도 있고 오세훈도 있다. 이들도 민주당의 내분을 바라보며 훗날에 다가올 기회의 창에 자신을 내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

<전망>

위 내용들을 종합해보자. 앞으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28년 4월에 다음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한참 후 이야기 같지만 사실상 늦어도 내년 하반기면 실질적인 총선 정국이 이어질 것이다. 지금과 같은 민주당의 분열상이 지속된다면 2)의 기득권 그룹은 어떤 패를 꺼낼까? 아마도 이재명의 재판을 다시 시작하는 수를 둘 것 같다. 무리수라고? 지난 대선 국면에 파기환송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작은 기회의 틈만 나타나면 언제든 액션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처리….. 조희대의 임기가 27년 6월이다. 내년 상반기 이 정권의 지지율이 20~30% 대에 머무른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조희대가 다시 재판을 시작해도 식어버린 민주진영에서는 내란 때와 같은 민중운동이 일어나기 힘들다. 남아 있는 1) 뉴이재명 세력들은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망연자실 하겠지만 기존의 코어 지지층들이 이미 정권이 중단되는 것에 체념한 상태일 것이다. 법조 엘리트를 위시한 기득권 세력은 이미 판을 짜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대항마로 누굴 생각할까? 솔직히 말하면 보수기득권 세력의 포석도 그동안 삽질에 삽질을 거듭해왔다. 당자 윤석렬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는 오세훈>장동혁>한동훈 순이 아닐까 한다. 왜? 그나마 오세훈은 이미 기득권 세력과 유연하게 결탁해온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다. 사법 리스크가 있는거 아니냐고? 다시 말하지만 파기환송을 떠올려 보라. 어차피 패는 그들이 쥐고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묘하게 모든 사건의 결정적 요소들이 내년 상반기, 대법원을 향해 있다.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이런 시나리오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생각을 하니까 실제로는 안될거라는 믿음도 있다. 만약에 이렇게 된다면 나는 혼돈의 시기에 주식을 살 것이다. 내가 조금 더 똑똑했다면 지난 내란의 시기에 한숨만 쉬지 않고 주식투자를 왕창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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