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가족여행>

<2025년 여름 가족여행>
지난주 가족 여름 휴가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이제 아이들이 커서 아빠, 엄마와 가는 여행은 기본적으로 시큰둥하다. 뭔가 이 친구들도 따라올만한, 도전적인 동기부여를 해야할 것 같아서 여러 아이템들을 고민해봤다. 그 와중에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인 한라산 백록담을 아직 못 가본 것이 생각나서 몇 개월 전부터 일정을 잡고 준비를 했다. 혹시라도 내가 자빠지면 안되니까 틈이 날 때마다 병원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데카트론 매장에 들러서 장비들도 쭉 마련하고 등산 관련 유튜브, 한라산 등산 코스를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쳤다.

목포에서 카페리에 차를 싣고 새벽에 제주에 도착해 성산 일출봉을 보고, 우도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 본섬으로 돌아왔는데 제주도도 미친듯이 더웠다. 서귀포일대를 거닐다가 더위에 지쳐 돈내코 계곡을 찾아 들어갔다. 차가운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한라산에 입성하기 위한 목욕재계를 했다. 그리고 숙소에 일찍 들어가 담날 산행을 위한 짐을 싸고 일찍 잠을 청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관음사 입구에 도착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입산 등록을 하고 시계를 확인하니 정확히 새벽 6:40분이었다.

백록담을 보고 성판악으로 내려와 등산로 출구를 나오니 우연하게도 저녁 6:40분이었다. 12시간, 총 거리 19km, 상승고도가 어림잡아 1300~1400 미터는 되는 빡센 산행이었다. 우려했던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건해져 있었다. 등산 스틱도 없이 저 긴 코스를 다녀와서 하루 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했다. 반면에 어른들은 다녀와서 몇일을 끙끙거리며 회복을 해야만 했다.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고 했지만 그 와중에도 빠진 것이 있었다. 아내가 백록담에 거의 다와서 급격히 처지고 몸에 저린 증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저나트륨혈증이 온 것 같아서 가방에 비상식량 들을 살펴보니 에너지바에 소금성분이 꽤 들어 있어 급히 아내에게 먹도록 했다. 이후 호전되어 무사히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위기가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성판악으로 내려오다가 사라오름을 잠깐 들러 나오는데 왠 중년여성이 바닥에 누워있고 아이들이 어쩔줄을 모르고 엄마를 주무르고 있었다. 아내와 비슷한 상황 같은데 내 가방에는 소금기 있는 비상식량은 다 떨어졌고 ABC 초콜렛 두 개만 남아 있었다. 아들로 짐작되는 친구가 가진 식량 중에 짠 맛이 첨가된 견과류가 있길레 우선 그거부터 엄마에게 드리도록 하고, 혹시 몰라서 내가 가진 초콜렛도 주고 우리는 먼저 내려왔다. 두 아들놈들은 벌써 먼저 산 아래로 내려가고, 아내와 함께 출구가 4km 남은 속밭대피소에 좀 쉬고 있는데 다행히 쓰러져 있던 여성분은 무사히 걸어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청년이 다가와 고맙다고 작은 초코바 하나를 주고 헤어졌는데 이 초코바가 후에 큰 역할을 했다. 아내가 남은 4km 하산길을 앞두고 급격히 지치기 시작했다. 2km는 정도를 겨우겨우 내려왔지만 다시 저나트륨혈증 증세와 함께 급격히 걸음이 느려지며 늘어지는 것이다. 이미 늦은 오후가 되며 등산로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고, 내려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 머리속도 갑자기 복합해지며 여기서 아내를 업고 내려가야하나, 구조대 출동을 요쳥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방에 남은 것은 아까 그 친구가 준 작은 초코바 하나….. 영양분을 보니 나트륨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아내에게 한입이라도 베어 먹도록 했다. 아내는 속도 메스꺼워지기 시작해서 작은 초코바 조각도 겨우 삼켰다. 그래도 이 초코바를 섭취하고 나서 다시 증세가 호전되어 무사히 남은 하산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우연과 우연이 겹쳐 큰 위기를 넘긴 것 같다. 등골이 서늘하다.

캐나다 록키를 뻔질나게 드나들고, 미국 국립공원을 빡세게 다녔어도 이번 한라산 등산이 지금껏 우리 가족이 경험한 가장 도전적인 모험이었다. 역시 조선땅 쉽지 않은 곳이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이렇데 다닐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만…. 꾸준히 준비해서 지리산 종주, 설악산 등반 같은 곳들도 꼭 해봐야겠다. 물론 전해질 보충제를 꼭 챙겨야겠지.

<여담>
# 예전에는 백록담 가는 코스가 여럿 있었다는데 지금은 딱 두 코스만 열려 있고 입장객 수도 제한한다. 두 코스 모두 편도 10km 좀 안되는 길이라 지금 더 쉬운 코스는 없는 셈이다. 좀 쉽게 백록담을 다녀가셨던 분들은 아마 좀 짧은 영실코스로 올랐을 것이다.
# 등산스틱이 진짜 엄청난 역할을 하더라… 특히 내려올 때 무릎에 걸리는 충격을 많이 줄여줘서 하산이 수월했다. 몸이 낡으니까 더 절실히 느끼는 것 같다.
# 여름 한라산 등산길은 바닥 돌에 이끼가 많고 습해서 많이 미끄럽고 위험했다. 꼭 좋은 등산화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 다양한 야생동물을 볼 수 있었다. 관음사 코스로 올라가는 길에 검독수리 추정되는 거대한 맹금류(사진은 찍지 못했다.)를 확인했고, 하산길에 노루와 야생 멧돼지를 볼 수 있었다. 사라오름에서는 햇볕을 쬐는 살모사 무리도 만났다.
# 우도는 대략 오전 10시~오후 5시에는 중국인이 점령하드라. 이 시간만 피하면 꽤 조용하고 쾌적하게 섬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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