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뜬금없는 음악 이야기>-유앤미 블루(U&Me Blue)
요즘 긴 호흡의 글을 자주 적지 않으니 뇌가 점점 썩어가는 기분이다. 써야할 이야깃거리야 늘 있지만 내뱉는 것도 점점 조심스럽다. 일요일 당직을 서는데 오랫만에 구름 사이로 해가 들더라. 마침 노티가 뜸하길래 잠깐 성내천을 지나 한강으로 나갔다. 눅눅한 습기에 등은 금새 땀으로 젖어 버렸지만 귀에 꽂힌 유앤미 블루의 노래가 따뜻한 오후 햇살과 버무려져서 청량감마저 들었다.
#1. 100대 명반
연수기간, 미국 일주 준비물 중에 하나가 차에서 가족과 함께 들을 음악이었다. 그 긴 시간을 차에서 보내야 하는데 뭔가 들어야하지 않겠나… 사실 나는 음악이든 책이든 뭔가 골라야 할 때는 사실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린디효과’라고 하나? 그냥 남들이 좋다고 많이 언급한 고전을 고르면 된다. 한번쯤 제목을 들어봤는데 못 읽어봤거나 못 들어본 것이면 그걸 고르면 된다는 뜻이다. 늘 뭔가 새로운게 쏟아져 나오지만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고 세상은 돌고 돈다. 그런 생각으로 나무위키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를 보고 못들어본 앨범들을 하나씩 찾아 들었다. 연수간 23년 겨울 Kananaskis (얼마 전 G7 summit이 있었던 바로 그 곳)에 스키장을 애들과 뻔질나게 드나들 때부터 시작해서, 작년 미국 일주를 돌며 거의 한 번은 다 들어본 것 같다. 사실 이미 들어본 앨범이 30~40개 정도고 뮤지션 이름은 알지만 못 들어본게 40%정도, 이름도 생소한 것이 20% 정도 였던 거 같다. 일부 앨범들 (신중현과 엽전들, 사랑과 평화가 유독 기억에 난다) 은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서 명반이 왜 명반인지 지극히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취향 측면에서는 힙합이나 랩, 헤비메탈 같은 음악은 내 귀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주로 포크음악, 잘해야 모던록, 블루스 정도까지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한계이고, 이것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2. 언제적 유앤미블루
나는 한번 꽂힌 음악은 계속 귀에 걸어두고 반복해서 듣는 스타일이다. 이번 명반 탐험에서 걸려서 가장 많이 들은 음반이 유앤미블루의 2집, ‘Cry… Our Wanna Be Nation!’ 이다. 조금 뻥 보태면 캐나다-미국-한국을 거쳐서 한 237번 정도 들은 것 같다. 이 그룹의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승열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을 배출한 명망있는 밴드라는 지식도 갖추고 있었지만 음악은 접한 적이 없었다. 앨범이 나온 시기가 96년이니 거의 30년 전, 내가 중학생 시절이다. 이 앨범의 두 번째 사운드 트랙은 ‘그대 영혼에’는 그때 상영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영화에 OST로 들어갔다고 한다. 사실 중학생 때 가족과 함께 교동시장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온 기억이 있다. 그러니 유앤미블루의 음악을 내가 처음들은 것은 아닌 셈이다. 여하튼 무려 30년이다…. 30년.. 그때 나온 음악에 빠져서 거의 1년 정도를 노래가 필요한 순간에는 이 앨범만 틀고 앉아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아빠 모습을어떻게 기억할까? 배호, 김상진, 김정호 같은 가수의 음악을 틀어놓고 듣는 우리 아버지 세대를 보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3. 방준석
유앤미블루는 잘 몰랐지만 이승열의 노래는 몇 곡은 옛날에 열심히 듣기도 했었고, 음악계에서 많은 후배들이 존경하는 숨어있는 고수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앨범을 들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또다른 멤버인 방준석이다. 특히 무엇보다 그의 보컬로서의 매력이 내 귀에 쏙 들어왔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비슷한 면도 있지만 방준석의 보컬이 조금 더 청춘의 들뜸, 가벼움, 불안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취향은 방준석의 보컬로 확인히 기울어 있다. (이 앨범의 노래들은 이승열과 방준석이 각각 따로 만들고 부른 노래들의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승열의 보컬을 칭송하지만 나는 왜 사람들이 방준석의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는지 좀 의아하다. 안타깝게도 방준석은 지난 22년, 위암이 재발하여 돌아가셨다. 그는 유앤미블루의 실패 이후 영화음악으로 방향을 틀어 굵직한 족적을 많이 남겼다. 라디오 스타, 베테랑, JSA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많은 작품에서 그는 음악을 담당했다. 그러면 뭘하나…. 이제 다시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남겨놓은 그의 목소리도 사람들이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유튜브 조회수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 가는지도 모르겠다.
#4. 여담들
-유앤미블루의 듀오인 이승열과 방준석은 미국교포출신이다. 같은 대학교에서 만나 밴드를 결성해 한국으로 왔다. 이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묘하게 교포 출신들이 노래를 부를 때 보여 주는 독특한 발성들이 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가사 역시 익숙한 한국어 단어들로 지어져 있음에도 묘한 이질감이 있어서 딱딱 뇌리에 박히지 않는다.
-음악 전반에 은은히 깔려 있는 꿀꿀한 정서의 시작이 바로 이 ‘이질감’이 아닐까 뇌피셜을 굴려본다. 본토 미국에서 음악을 하기에 이름도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 출신 동양청년들은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고, 막상 한국에 와서도 그들이 가져온 모던록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수많은 벽을 만나 겉돌았을 것 같다. 어디서도 어울리지 못하고, 게다가 20대의 청춘은 투명하고 맑지만 늘 깨져버릴 것만 같다.
-사실 그래서 40대 중반에 중학생 아들 둘을 키우는 아재 감성으로 들을 음악이 아닌데 난 왜 이렇게 빠져버렸을까? 지나가버린 20대 시절이 생각나는 것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20대에 이 음악을 제대로 접했다면 진짜 지독스럽게도 좋았을 것 같다. 그 아쉬움을 알아서 더더욱 미련이 남아 이렇게 열심히 듣는다.
-조승우가 유앤미블루를 아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2002년에 나온 후아유라는 영화가 있는데 .. 이 영화에 조승우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잠깐 등장한다. 나는 그 장면이 왠지 모르게 너무 좋아서 뇌리에 박혀 있는데 이번에 유앤미블루의 음악을 들으며 자꾸 그게 떠올랐다. 아마 조승우 보컬이 유앤미블루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바로 이런게 소위 말하는 ‘meme’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었는데 찾아보니 후아유의 음악감독이 방준석이었다 -_-;;;;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앨범의 모든 노래가 좋지만 딱 하나만 공유합니다. (유앤미블루 – 그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