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야기 #14>병원에서 봉사활동하기

<캐나다 이야기 #14>병원에서 봉사활동하기

1. 병원 자원봉사자 되기
올해 초부터 내가 출근하고 있는 Foothills Medical Center (FMC)에 병원 자원봉사자일을 가끔하고 있다. 나는 연수를 오면서 연구원 신분으로 병원과 대학 (University of Calgary)에 소속되어 있어서 당연히 임상과 관련된 일은 전혀 없다. 다만 초청해준 Sean의 배려로 병실, 외래 등 임상현장을 참관하는 수준이었다. 병원자원봉사자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인가부터 맨날타는 엘리베이터에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괜히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정작 한국에서 병원에서 일할 때는 군데군데 보이던 자원봉사자분들을 스쳐지나가면서 1도 관심이 없었는데…. 연수를 왔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기니 눈에 들어오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그 김에 현지인들이랑 말도 좀 섞고 영어회화도 좀 늘여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10년 넘게 병원밥 먹고 살았는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한번 바라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같은 책처럼, 일종의 질적연구 비스무리한 작업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막상 결심을 하고 진행을 하자니 자원봉사자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_-;; 우선 자원봉사자 코디네이터와 1시간 이상의 심층 면접을 해야했다. 아마도 매뉴얼이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자원봉사를 하는 동기나 태도 등에 대해서 세세하게 묻고 답하는,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어떤 면접보다 상세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이곳 경찰청에 범죄경력 조회를 한 서류를 받아서 제출해야 했고, (몇 주 걸린다) 두 명으로 부터 추천서를 받아야 했다. 나는 추천인들을 섭외해서 코디네이터에게 추천인의 메일 주소만 전달하면 추천 관련 내용은 그쪽에서 알아서 진행했다. 나를 초청해준 Sean과, 한국의 선배 교수님을 섭외해서 해결을 했는데 Sean이 나중에 무슨 Surgeon 뽑는 것처럼 추천서가 빡셌다고 농담을 해줬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병원의 자원봉사자가 되어 2월부터 간간히 일을 해왔다.

2. 자원봉사자가 하는 일
자원봉사자가 하는 일의 유형은 생각보다 상당히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짐작하듯 길안내 (Wayfinder) 일이다. 기본 업무이기 때문에 자원봉사자가 되면 첫 몇 시간을 필수로 숙련된 선배 자원봉사자와 매칭하여 병원 안내에 대한 훈련을 받게 된다. 기본 단위가 3시간이며 병원의 주요 빌딩 별로 업무가 나뉘어져 있다. 병원이란 곳은 세계 어디를 가든 미로와 같고, 환자와 보호자는 늘 헤매이게 된다. 자상한 선배 봉사자들의 친철한 교육 덕택에 이제 내 구역은 좀 익숙해졌지만 솔직히 지금도 Wayfinder를 하면 좀 쫄린다. 구린 영어로 먼저 친절하게 다가가는 것도 참 뻘쭘하다. 여튼 3시간을 이곳저곳 쏘아다니면 운동도 되고 나쁘지 않다.

길안내 외에도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각 종 특수 자원봉사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어서 본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다. 하나의 예를 들면 Hospital Elder Life Program (HELP) 프로그램이라고 입원한 노인 환자를 한명 맡아 전담해서 같이 돌보는 프로그램인데 자원봉사자를 위주로 돌아간다. 사실 애초에 나도 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어 지원을 했다. 이러한 특수한 업무는 모두 사전에 필요한 교육 (주로 온라인) 을 이수해야지만 맡을 수가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자원봉사자의 행위에서는 그에 선행하는 교육프로그램 이수를 전제로 되어 있다.

최근에 FMC에서는 바로 옆에 엄청나게 큰 암센터를 지었다. 내 생각에 단일 암센터로는 우리나라의 개별 대형병원 암센터들보다 규모가 훨씬 크지 않을까 싶다. (여기 스탈을 생각하면 사이즈는 커도 진료량은 우리나라 단일 센터의 근처도 못 갈 듯) 알버타 주 남부를 거의 다 커버해야하기 때문에 이렇게 크게 지었나 싶은데… 여튼 주정부 복지의 핵심사업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 센터가 이번달 말에 개원을 앞두고 있다가 보니 자질구레한 준비업무의 상당수가 자원봉사 업무로 해결되고 있다. 거의 하루걸러 하루 자원봉사자 모집 메일이 오고 있고 나도 요즘은 주로 여기에 투입된다. 업무는 뭐… 사무실 락커의 키 넘버 모으기, 라벨지 만들어 붙이기, 가구 조립… 등등 단순 업무라 어렵지 않다. 말 잘 통하는 친구 만나 노가리 까다보면 3시간 훅 간다.

3. 자원봉사자의 유형
여러 자원봉사자를 만나다보니 대략적으로 유형이 나뉜다.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다. 1) 의대지원자 : 아무래도 숫자로는 가장 많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서 의대를 가려면 250시간의 자원봉사 시간을 채워야 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이쪽에 관심있는 대학생, 대학원생은 자원봉사를 할 수밖에 없다. 나도 첨 자원봉사 할 때 의대가려는 학생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_-;; 아마도 마스크를 써서 그랬을 것이다. 이 친구들은 대체로 착하고 좋은데 가끔 정말 시간만 떼우려는 경향도 있어 보였다.

2) 보건의료관련 전문성을 가진 이민자: 꽤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고국에서는 의사, 임상병리사, 간호사 등등 관련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고, 캐나다에 와서 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서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제도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전문성을 여기서 바로 인정해줄리 만무하다. 이런 봉사활동 시간 같은 것이 아마도 어떤 형태의 레퍼런스로 작용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마취과 전문의 포함,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보건 의료 인력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 분들은 나름 절박해서 그런지 대체로 매우 열정적인 느낌이었다.

3) 은퇴한 캐나다 현지인 : 온화한 표정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시다. 백인인 경우가 대다수이고 대체로 여유가 있으신 분들 같았다. 나는 이런 분들을 만나면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를 꼭 물어보았다. 대답은 다양했다. 본인이나 가족이 병환을 겪으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사람, 자식이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데 본인은 병원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람, 그냥 은퇴했고 병원 가까이 사는데 운동삼아서 한다는 사람 등…. 이 분들은 굉장히 안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어쩌면 사실상 자원봉사자 인력의 핵심 축이 아닐까 한다.

4. 여담 (1) – 캐나다에서 자원봉사
사실 병원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다녀보면 자원봉사자의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조직이 상당히 많다. YMCA 센터 (큰 체육관) 도 대부분 자원봉사자 인력으로 굴러가고, 주요 관광지 (주로 공립인) 에 가면 유형 3)에 해당하는 자원봉사자분이 우아한 태도로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비슷했던 거 같기도 한데… 그게 훨씬 보편화된 느낌이랄까? 이 나라 사람들이 훨씬 자원봉사정신이 강해서 그럴거라고 생각한다면 말 그대로 ‘naive’한 접근이다. 사실 기본적으로 ‘자원봉사’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식 사고방식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내가 시간과 노동을 투입하는데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는 일은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자원봉사 시스템이 활발하게 굴러갈 수 있을까?

몇 가지 요인들이 있어 보이는데 첫번째는 촘촘하게 짜놓은 Secondary gain 시스템이다. 앞서 의대입학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의대 뿐만 아니라 YMCA같은 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젊은 자원봉사자들도 그 시간들을 레퍼런스삼아 후에 본인들 경력 개발에 사용한다. 병원에서도 자원봉사자에게는 기념품 가게에 세일을 적용해준다던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쿠폰을 준다던가… 중간중간에 ‘자원 봉사자님들의 노력으로 우리 병원이 어쩌구저쩌구,,,, 무슨 무슨 행사에 모십니다’ 하는 우쭈쭈 메일이 계속 날아온다. 비록 인건비는 받지 않지만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유입되게끔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것이다.

두번째는 자원봉사자라는 특수한 인력이 일종의 인력시장의 구성원으로 이 사회 전반에 이미 녹아들어 성숙해왔다는 점이다. 세상의 일 중에 아주 대단한 전문성이 필요하진 않지만, 없으면 상당히 아쉬운 일(이를테면 길안내 같은) 이 언제나 존재한다. 사람 값이 비싼 이 땅에서 사람을 쓰자니 돈이 비싸고, 안 쓰자니 버벅거리고…. 그런 기름칠 업무를 소화해낼 인력으로 자원봉사자라는 포지션이 다양한 유인책과 함께 잘 버무려진 것이다. 예전에 상수도, 하수도도 아닌 중수도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과 비슷하달까? 여하튼 봉사정신, 이타심…이런 요소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설명력을 가진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디폴트가 ‘열정페이’인 곳과 디폴트가 ‘Pay me’인 곳의 차이인 셈이다. 저런 일들 까짓꺼 우리나라 같으면 위에서 시키면 아랫사람들이 후다닥 순식간에 해버릴 것들인데 여기는 그게 안되니까 말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점점 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자원봉사자를 뽑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신중하고 이유도 이제 좀 설명이 된다. 아무리 Secondary gain을 잘 만들어 두어도 이 시스템이 굴러가려면, 즉 이례적인 상황을 받아드리려면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신뢰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잘 소화한 사람, 자원봉사경력이 그 사람의 ‘질’을 입증하는 표식으로 선순환되는 것이다.

5. 여담 (2) – Nepotism (족벌주의)에 대한 소고
자원봉사와는 조금 빗나간 이야기지만 Nepotism이야기를 해보자. 앞서 의대지원과 관련해서 자원봉사시간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이 봉사활동시간에 대해서 매우 철저하고, 정밀하게 관리한다. 자원봉사를 시작할 때 앱으로 시작을 클릭하고, 마칠 때 종료를 클릭한다. 의대지원할 자원봉사자는 메일로 신청하면 자원봉사자 사무실에서 일괄 수합해서 각 의대로 관련정보를 보내준다고 한다. (나도 이런 안내 메일을 받았다) 일견 좋은 제도 같지만 좀 꼬인 생각도 들었다. 의과대학에 지원하기 위해서 추천서를 받고, 200시간이 넘는 자원봉사시간을 미리미리 채우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장벽이 되는 것은 아닐까? 예를들어 부모가 모두 하루종일 일터에 매달려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난민 혹은 이민자의 자식과 의과대학이나 대학의 교수의 자식이 과연 같은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인가? 한 사례에 불과하지만 우리 랩에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는 한 친구는 알고보니 뇌졸중 분야에서 유명한 신경과 교수님의 딸이었다. (우리 랩은 뇌졸중 재활 관련 랩이다) 이 친구는 대학졸업 후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YMCA에서 유방암환우회 운동프로그램 관련 봉사활동도 한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정말 착하고 성실한 친구고, 랩에서도 인정받는 친구라 Nepotism의 프레임을 씌우기는 참 미안하지만 과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여러 의과대학 지망생 자원봉사자들에게 이와 관련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물론 특정인 사례 이야기는 하지 않고 뱅뱅 돌려서) 나의 유도심문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인 그들의 답변은 의과대학 입시에서 Nepotism이나 일종의 불평등은 거의 발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아마 한국에서 같은 질문을 했다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여기는 입시, 의대진학 같은 것이 우리나라만큼 계급전쟁처럼 되어있지 않은 점이 크다. 학생들도 ‘의사되면 좋긴한데 힘들다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설마 의대입시에서 그렇게 불공정하게 사람 뽑기야 하겠어요.’ 뭐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캐나다 주류 사회가 은밀하게, 세련되게 조직해놓은 Nepotism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Nepotism은 인간의 유전자에 지울 수 없이 새겨진 코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입시에서 Nepotism 이슈로 한동안 떠들석 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고 그 중에 ‘봉사활동’이라는 요소 하나만 놓고 볼 때 첨예한 한국의 입시에서 이 부분이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을지 여전히 우려된다. 단순히 실제봉사활동 시간을 얼마나 정확히 기록하고, 거짓으로 보고하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원봉사활동’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들, 그리고 내재된 사회적 합의 같은 것들 없이 단순히 개인의 봉사정신(도대체 봉사정신이 뭐지?)을 계량하는 잣대처럼 사용되는 것 같아서이다. 자원봉사를 2만 시간 하면 그면 큼 더 봉사정신이 투철하다는 건가? 솔직히 나도 여기서 고민해보기 전까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볼 때 캐나다에서 의대 지망생에게 250시간의 봉사활동을 요구하는 것은 정말 좋은 제도같다. 향후에 그가 의사가 되더라도,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다양한 직종과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일이 돌아가는 시스템의 냄새를 맡아본 것과 아닌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만 과연 한국 사회가 그런 제도를 품을 수 있을 만한 역량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과거급제와 금의환향, 입신양명의 유산이 남아서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영전하면 영감님이 되고, 의사고시를 패스하면 병원의 짱이 되어서 안하무인이 되기 쉬운 의식구조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하에서 말이다. 지금 우리가 그 현실을 매일매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시간과 논의,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 같다. 즉, 지금의 혼란도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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