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 한 덩이..

돈까스 한 덩이..

명절이후 또다시 찾아온 나른한 토요일 오후, 아이들과 동네공터에서 자전거도 타고 줄넘기도 하고 축구도 하고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간만에 가족끼리 점심 외식을 하기로 하였는데 메뉴는 나의 선호를 이루기 위해 아이들을 꼬득여 아내의 탐탁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돈까스로 정해졌다. 자고로 정상적인 이 땅의 성인 남성이라면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돈까스를 섭취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돈까스 먹을 수 있는 곳이야 대한민국에 100미터마다 한군데 정도는 있겠지만 아무곳에나 갈 수는 없는 법, 검색을 통해 봉천동에 유명한 돈가스 집을 찾아갔다.

식당은 봉천시장 근처에 있어서 매우 혼잡스럽고 특히 주차가 어려웠다. 아내의 타박과 그를 따라하는 아이들의 어처구니 없는 잔소리를 묵묵히 이겨내고 식당에 들어섰다. 돈까스의 품질은그럭저럭 괜찮았고, 특히 주인집 아주머니가 매우 친절하셨다. 돈까스+냉모밀 셋트, 생선까스+우동셋트, 치즈돈까스 이렇게 시켰는데 아이들이 바깥활동을 해서 배가 많이 고프기도 했거니와 이제 부쩍자라서 흡입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로 충분했는데 이제 홍이는 어른 일인분을 너끈히 소화하고, 겸이도 만만찮게 먹는다. 정작 돈까스 돈까스 노래를 불렀던 내가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아내가 황송하옵게도 양이 모자라면 돈까스 하나를 더 시켜먹으라고 윤허해주셨다. 나도 그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닌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식당에 들어오면서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던 것이다.

더 먹고 싶었지만 식욕이 당기질 않았다. 유혹을 뿌리치고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때마침 남녀가 뒤섞인 젊은 친구들 한무리가 들어와서 화장실 문 옆 테이블에 앉는다. 이곳은 시장통의 부실한 건물에 위치한 식당이라 화장실이 상당히 고풍스러웠다. 내 키높이도 안되는 빈약한 나무문이 가로막고 있고 그 안에 세면대도 없는 수도꼭지 하나와 쪼그려앉는 수세식 변기가 놓인 협소한 화장실이었다. 만약 여기서 큰 일을 치룬다면 그때 발생하는 각종 물리적 현상이 홀에도 전달될거란 공포감이 들기에 충분했다. 망설임도 잠시…. 증폭되는 배변의 신호는 이미 모든 상념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족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보니 그래도 변기가 나름 깊숙히 위치해 있고, 외부로 열린 창문의 환풍기 소리가 충분히 커서 우려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안심을 하고 한창 익숙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뿔싸…….. 화장실 밖에서 이홍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뭐해?”….. 헉… 예상치 못한 상황전개다. 아무 대답이 들지지 않자 이홍은 더 큰 소리로 “아빠 뭐해? 아빠 똥 싸?…. 이거 뭐라 대답하기도 난감하고.. 머리를 쥐어 뜯고 있는데 식당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도 다시 한번 비수를 꽂는다. “아빠 똥 싸!!” ….크흐.. 이 자식이 애비를 능멸하는구나.. 화를 낼 순 없고 나지막히 작은 소리로 내뱉었다. “으…응.. 아빠 똥 싸..” 잠시 후 저 멀리서 들려오는 홍이의 한 마디가 확인사살까지 마무리한다. “엄마.. 아빠 똥 싼데..”

화장실 밖을 나와 최대한 젊은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계산대로 직행했다. 계산을 하려는데 친절하신 아주머니가 “에그.. 애들 때문에 많이 못 먹었죠? 나도 아들만 넷을 키웠수.. 내가 미쳤지… 서비스로 돈까스 한 덩이 드릴테니 드시고 가세요.”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먹지 못했는데 속까지 비워내니 다시 식욕이 돋는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이걸 먹으면 저 젊은이들은 머라고 생각할까? 저 아저씨는 똥 싸고 나와서 또 돈까스 더 먹네…하겠지… 고민이 들었지만 괜히 넉살 좋은 척 “아이고 감사합니다. 다음에 와서 더 많이 먹겠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하고 가게를 나섰다. 나와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홍이가 아빠똥싸를 하는 순간 그 쪽 테이블에서 키득거리고 난리가 났단다.

그 사람들이 뭐라고 다시 만날 확률도 거의 없고 만난들 알아볼리도 만무한데 그놈의 체면이 뭐라고 내가 왜 그 서비스 돈까스를 먹지 않았을까? 오늘도 그 돈까스 한 덩이의 아쉬움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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