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러닝 입문기 (2)>-의료현장을 중심으로

<머신러닝 입문기 (2)>-의료현장을 중심으로

3. 알고리듬의 세계 vs 머신러닝의 세계
머신러닝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라면 들어 봄직한 대비일 것이다. 그런데 나도 후자의 개념을 익숙하게 만든데 꽤 시간이 걸렸다. 왜 그럴까? 우리가 받아온 교육체계가 뭔가 로직이 있고, 설명 가능한 세계를 더 우월한 것으로 여기도록 압박을 가해온게 그 원인 중 하나로 생각된다. 의학교육에서 배운 수많은 진단, 치료 알고리듬과 생각의 틀. 그리고 생화학, 생리학, 약리학을 바탕으로 한 절대불변의 원칙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알고리듬을 얹어 언제나 재연 가능하고, 변하지 않는 결과를 산출해내는 모종의 시스템을 이상향처럼 여기게 된다. 이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사진처럼 찍어 외워 적용하는 의사는 동료 의사들 사이에서 선망과 존경을 받는 대상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뒤쳐지는 것처럼 여기는 풍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경험과 직관의 힘을 잘 믿지 못하고 때론 열등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전자가 가진 막강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는 대부분 전자를 활용하여 개발된 것임이 틀림이 없다. 병원에서 수없이 떠돌아다니는 진료 프로토콜과 지침, 가이드 라인…. 숨막히게 만드는 그것들이 이 거대한 시스템을 지탱해온 축이다. 그런데 복귀해서 그런 것들을 접할 때마다 짜증이 밀려온다. 이게 다 뭐람…. 그냥 AI 학습시켜서 하게 만들지….. 오늘 오후 의학교육 관련 세미나를 한참이나 들었다. 인간들에게 그 수많은 지식을 가르쳐서 뭔가 쓸모있는 인재(?)를 키운다는 생각들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2000명씩이나 늘려서 말이다. 당직을 핑계로 저녁식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어차피 뻘줌함을 못이겨 술이나 들이키다 통성명하고, 근근히 이야깃거리나 겨우 찾아 ‘친분’이라는 얄팍한 인간스러운 것만 얻고 올텐데 말이다.

4. 생산성의 향상
제프리 힌튼이 이야기했듯 머신러닝의 발전은 문명사에서 큰 변곡점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획기적으로 벗어나게 한 계기가 되었고, 머신러닝은 지적 한계를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그것을 체험한다. 연수 복귀 후 전공의 없이 입원환자를 보며 발생하는 수많은 의사결정과 질문을 ChatGPT와 해결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대체로 재활의사의 내과적 역량은 상당히 불량하다. 변명을 하자면 어쩔 수가 없다. 내과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은 애초에 적극적인 재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학생 때 공부를 해 지식이 있어도 경험이 없으니 그게 안 된다. 교수가 되면 그런 복잡한(?) 문제는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던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던질 곳도 없다. ChatGPT에게 피검사 결과 및 영상검사의 해석 약물 투여 물어보면 척척이다. 그리고 human(주로 우리 형)에게 더블체크하면 대체로 다 맞는 판단을 내린다. 물론 진료행위에 있어 통상적으로 ‘인간에게’ 해야하는 자문 절차를 꼭 하지만 뒤늦은 인간의 답변을 기다리며 어영부영하고 있을 바에게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쳐내야 하는게 이쪽 일이다. 한 개인의 의사로서 나의 생산성은 이 친구 덕택에 최소 50%이상 향상된 것은 틀림이 없다. 모든 분야가 비슷비슷할 것이다.

5. Overfitting의 이슈
조금 엇나간 이야기지만 머신러닝을 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개념은 바로 이 Overfitting 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짧게 설명해보자. 인공신경망(AI)은 어쨋거나 학습데이터에 의존한다. 학습데이터를 계속 반복 학습하면서 데이터에 감추어진 패턴을 인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학습이 반복될수록 인공신경망이 너무나 학습데이터에 ‘과적합’ 즉, overfit 되는 것이다. 아무리 데이터를 많이 모은다 하더라도 실제 세계와 비교하자면 학습 데이터도 그 일부일 뿐이다. 즉, 실제 세계 전체를 담지는 못한다. 그렇게 과적합된 인공신경망은 학습데이터를 벗어나는 상황을 만나면 쌩뚱맞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개념을 통해서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지 마라. ‘자신을 과신하지 마라,’는 교훈을 얻는다. 인간은 쉽사리 Overfit될 수 있고, 특히 공부 좀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럴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인간사에서 관찰되는 수많은 비상식적인 판단과 결정에는 시스템에 Overfit된 개인과 그를 허용하는 이기심이 역할을 하지 않을까? 의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교과서에만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 반복된 학습과 판단은 어느순간 Overfit으로 이어지기 쉽다. 또한 지침이라는 딱딱한 체계에 수없이 길들여져서 정작 중요한 숲을 놓칠 수도 있다. 대학에 나온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의 이야기는 탕왕께서 매일매일 학습데이터를 벗어난 새로운 세계를 접해서, overfit되지 말라는 충고를 던지는 것 같다.

6. 재활의학은? 나는?
내가 몸담은 재활의학을 머신러닝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좀 특별한 생각이 든다. 생화학과 생리학, 약리학 기반으로 체계가 탄탄한 내과학 같은 분야와 달리 재활치료는 그 효과성을 입증하기도 어렵고 데이터도 지저분하다.-_-;;; 아마 인공신경망에게 관련한 임상연구 데이터를 주고 학습하라고 해도 아마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수련을 받을 때는 그 모호함이 참 싫기도 했지만 머신러닝의 시대를 접어들고 보니 오히려 이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패턴이 있고, 과거 데이터의 학습으로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은 이미 AI가 포석을 두고 있거나 둘 예정이다. 과학보다는 사회복지에 가까운 재활의학은 AI가 들이대기에 참 어려운 동네일 수 있다.
매일매일 ChatGPT에 의존해 진료를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늘 역모를 꿈꾼다. 이 놈이 절대 손대지 못할 것이 뭘까. 섬망과 수면장애 심한 환자를 finger enema (딱딱해진 대변이 항문을 막아 변을 못보면 손가락으로 파내는 행위. 누워있는 노인들에게서 잘 생김) 로 해결하거나, 비위관 (소위 콧줄. 입으로 못 먹는 환자에게 관으로 영양분을 공급)의 위치를 바꿔서 설사를 해결하거나 이런 일은 입원환자에서 흔해 빠진 일이지만 AI가 과연 알아내고 해결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환자를 만져서 (만진다는 표현은 부적절할 수 있다. 적절한 표현은 검진) 내 오감의 데이터로 내 Neural Net이 학습해서 얻는 감…. 말 그대로 감…. 너는 피검사 숫자나 사진이나 히스토리나 배워서 주절대지만 나는 사람을 직접 마주칠 수 있고, 듣고, 이야기하고, 교감할 수 있다. 절대 AI 녀석이 배울 생각도 못하는 그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것들이 있지만 지엽적인 것들이라 생략하자…. 그런데 언젠간 이런 것들도 이 미친 놈은 다 배울 것 같다. 초라하지만 그럴수록 더 인간스러운 것들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어쨋거나 인간으로 살아남아야 하니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