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사회화…

의사들의 사회화…

아기들을 재우고 현미경보러 병원에 왔다. 기계처럼 사진을 찍으면서 머리속으로는 계속 파업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 part 1
솔직히 난 의사로써 identity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기계과를 졸업하고 나서 편입을 했기 때문에, ‘조국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경제발전에 이바지 했어야할 공돌이가 변절하여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의대나 갔다’는 특수한 콤플렉스도 어느정도 있다. (다만 공대 다닐 때는 놈팽이 부류 였다는 치사한 합리화는 둘째치고..) 또한 친가/외가 가까운 친척 중에서 의사라곤 내가 처음이기 때문에 보고 들은 것도 없다. (생각보다 이런 부분이 한 개인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크다) 이런 것들을 떠나 내가 파업을 포함한 의료계의 여러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함 에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의 파업이 있다. 당시 공대생이었던 난 수많은 의대생 친구가 있었음에도 당시의 파업은 집단 이기주의의 프레임으로 바라봤고(당시 대다수의 대중이 그랬던거 같다) 침을 뱉었다. 당시에는 정말 대중들의 시선이 딱 거기까지였던 거 같다. 그랬던 내가 이제와서 입장바꿔 파업이니 어쩌고 목소리 내는 것은 여전히 염치 없게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 part 2
의료수가의 문제, 국민건강보험의 문제 등 의료체계의 문제 이전에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의사’라는 직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아닐까?… 이런 문제에 대해 오래전부터 의료계에서는 고심을 했던 거 같고, 내가 본과 다닐 무렵 환자-의사-사회라는 과목이 도입되는 등 현실을 타개해보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뻔한 이야기지만 급속히 성장해온 우리 사회전체의 왜곡된 철학+의사들의 잘못이 병합된 것으로 보인다. 의사가 아니었을 때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의학 혹은 의사에게는 조금 특별한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 틀림없다. 이 나라에서는 공돌이들에게도 국가의 번영이라는 성스러운 책무가 내려지기도 했었지만, 이건 개도국의 상황에서 좀 특수한 경우로 보이고, 의사들은 그 업 자체가 본질적으로 뭔가 사회에 헌신할 것을 요구한다. 의학이 잠시나마 몸담았던 이들이 그래서 조금 더 사회적인 부분에 역할을 한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체 게바라도 의사였고 루쉰도 의학 지망생이었다. 허나 우리나라에서는 딱히 그런 상징적인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장기려 박사님 정도… 최근에는 이태석 신부님 정도? 그러나 그들의 아름다운 의도(醫道)도 개인적인 신념, 혹은 종교적인 영역 정도에만 이르렀다고 하면 지난친 폄하일까? 물론 장기려 박사님의 청십자보험은 전두환 정권 시절에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근간인 국민건강보험이 탄생하는 씨앗이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 국민건강보험이 현재 보건의료에서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여하간 모호하지만 의사란 직종에게 사회에서 부과되는 책무를 그동안 소홀히 한 면이 없지않다고 생각되며,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의사에 대한 감정은 중고딩때 반에서 공부잘하고 똑똑하고 집에 돈도 좀 있고 열심히 하는데 재수없는 새끼…. 재단이 쓰레기라서 학교가 엉망이고 담임도 쫒겨나는 마당에 아랑곳 않고 입시공부나 하는 얄미운 놈,,, 머 이런 정도로 상상해 본다.

# part 3
그런 의사들이 파업을 하겠다고 한다. 처음은 아니다. 이미 14년 전에 홍역을 치렀고 그때는 국민들은 의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오늘날 의사들이 왜 다시 파업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불합리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의사인 친구들은 그동안 페북에서 친구들을 통해 백만번쯤 들었을 이야기일테고… 아닌 분들도 인터넷 좀만 돌아다녀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다. 어쨋거나 여러가지로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다른 것만은 틀림없다.
의사들은 지금 절망했고 이 시스템에서 미래를 보지 못한다. 정부라는 무시무시한 공룡은 이미 상처입고 긁힌 마지막 자존심, 전문인의 양심까지 팔아먹자고 쪼아댄다. 그러나 모든 행복은 불행의 씨앗인 것처럼,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의료계에 닥친 거대한 위기는 어쩌면 절호의 찬스일지도 모르겠다. 순진한 청년이, 쓰디쓴 사랑의 실패를 맛본 이후 한 단계 성숙해가는 것처럼… 이 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의사들이, 존재를 뒤흔드는 위기앞에서 좀 더 성숙하길 바란다면 나의 지나친 낭만일까? 세상의 부조리는 의사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곳만 합리적이거나 혹은 합리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마인드이다. 정당한 댓가는 커녕 치솟는 물가에 먹고살기도 빠듯한 노동환경에 놓인 이가 태반인 곳도 이곳이고, 파업한다고 면허 취소하겠다는 정부가 철도파업한다고 수천명 직위해제 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정부와 같은 정부이다. 이 위기를 통해 부조리와 불합리를 뼛속 깊이 새기고, 거기서 멈추지 말고 불교에서(난 기독교 신자임) 자신의 고(苦)를 각성한 자아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타인의 고(苦)를 이해함으로써 한단계 해탈에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좀 더 사회와 가까워 질 수 있다면 저 지긋지긋한 불신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 part 4
그래서 파업을 찬성하냐고? 물론이다. 그러나 파업 자체가 본질이 되어선 안된다. 정부와 힘겨루기가 되어서도 안된다. 다만 의사들이 자신들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이겨내고, 사회의 발전에 모범이 되는 모습, 그 과정으로 비춰줘야한다. 의사들에게는 오히려 힘든 시간이다. 응급상황이나 위기 상황으로 인한 인명손실이 파업으로 인한 것이면 결코 용납되지 못한다. 정부는 호시탐탐 그 기회만 엿보고 있을 것이다. 어디서 배워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정잡배나 하는 그런 꼼수나 쓰는지……. (대다수의 선량한 공무원을 욕하는 것은 아님..)

이제 우리 사회도 어떤 집단은 시기와 질투가 아닌, 무거운 책무에 걸맞은 존경과 대우를 받을 시대가 되지 않았나.. 의사들이 먼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의사로써가 아니라 한 시민으로써, 이제는 이 나라의 비전이 컴플렉스 쩌는 국민소득 몇 만 불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닌 전문가가 전문가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고, 그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실현되는 그런 것이 되었으면 한다. 이미 유행은 지난 용어다만 그런게 진정한 ‘국격’이 아닐까? 엄한 게 아니라..

아~~ 좀 자야되겠다. 잠을 못 잤더니 헛소리가 길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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